미국 의료진이 치명적인 감염으로 폐 기능이 완전히 멈춘 30대 남성의 양쪽 폐를 모두 제거한 뒤, 48시간 동안 인공 폐 시스템만으로 생명을 유지시켜 이식 수술까지 성공시키는 전례 없는 성과를 거뒀다.
지난 29일(현지 시각) 국제 학술지 '네이처'와 워싱턴포스트(WP)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2023년 초 미국 시카고 노스웨스턴 메디슨 병원 의료진은 패혈증으로 사망 직전이던 33세 환자의 감염된 폐를 모두 제거하는 수술을 진행했다.
이후 자체 개발한 특수 인공 폐 장치를 연결했고, 환자는 이틀을 견뎌낸 끝에 무사히 새 폐를 이식받았다. 이 환자는 현재까지도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환자 몸에 폐가 아예 없는 상태에서도, 인공 폐를 연결해 심장 기능과 혈압을 안정적으로 조절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는 점에서, 의학계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번 사례는 29일 국제학술지 '메드(Med)'에소개됐다.
◇폐 모두 떼 내고도 48시간 버텼다.
당시 환자는 미주리주 출신의 33세 남성이었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로 인한 급성 호흡곤란 증후군(ARDS)과 항생제 내성 세균(녹농균) 감염으로 폐가 말 그대로 고름으로 가득 차 형체를 알아보기도 어려운 상태였고, 심장과 신장까지 망가져 생명이 위급했다. 노스웨스턴 메디슨 병원의 안킷 바라트(Bharat) 교수는 "그대로 놔뒀다간 심장도 곧 멎을 위기였다"고 했다.
바라트 교수를 비롯한 의료진 15명은 바로 이 남성의 폐를 모두 제거하고 인공 폐를 연결하는 12시간짜리 대수술을 진행했다. 이후 폐를 완전히 제거한 상태에서 인공 폐 장치를 연결했다. 이 인공 폐 시스템은 환자의 심장에서 피를 뽑아 산소를 주입하는 동시에, 폐가 사라진 빈 공간에서도 심장이 무리 없이 뛸 수 있도록 혈류 압력을 정밀하게 조절했다.
이는 기존 에크모(ECMO) 장치보다도 한 단계 진화한 것이다. 에크모는 폐의 산소 공급 기능에 집중하기 때문에 폐가 제거된 상황에서는 혈류 압력을 맞추지 못해 심장에 큰 무리를 줄 수 있지만, 이 인공 폐는 폐가 사라진 빈자리의 혈압을 정밀하게 측정해 심장이 폐가 있을 때와 동일한 저항으로 피를 뿜어낼 수 있도록 돕는다. 덕분에 혈압 변화에도 심장이 지치지 않고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환자는 인공 폐 덕분에 48시간을 버틴 뒤 장기 이식 수술에도 성공했다. 바라트 교수는 네이처지와의 인터뷰에서 "몇 년이 지난 지금도 환자는 아주 잘 지내고 있다"면서 "장기 거부 반응이나 폐 기능 저하의 징후도 없었다"고 했다.
◇거듭되는 인공 장기의 진화
이번 수술은 인공 폐 기술이 어디까지 발전했는지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인공 폐 기술은 2000년대 중반부터 빠르게 진화해왔다. 미국에선 2017년 이전까지만 해도 폐 이식 대기 리스트에 이름을 올려놓고 장기를 기다리다 끝내 사망하는 환자 비율이 11% 정도였지만, 현재는 인공 폐 기술이 진화하면서 4%가량으로 줄어들었다.
인공 폐뿐만 아니라, 인공 심장, 인공 신장, 인공 간 기술도 비약적으로 진화하고 있다. 환자가 적합한 장기를 이식받기까지 수개월 또는 수년씩 버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장치다.
인공 심장은 최근 기계적 마찰이 없는 '자기 부상(Maglev)' 기술이 도입되면서 소음과 혈전 문제를 획기적으로 줄였다. 인공지능(AI)과도 결합해, 환자 활동량에 맞춰 혈류량을 스스로 조절하는 '맞춤형 인공 심장'도 나오고 있다.
올해 초 네덜란드에선 병원용 투석기 대신, 집에서도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휴대용 인공 신장(NeoKidney)'가 나왔다. 유전자 편집 기술로 만든 인공 간도 나오고 있다. 실제 간세포를 배양해 간의 복잡한 대사 기능을 대신 수행하도록 설계돼, 간 부전 환자들이 이식 수술까지 안전하게 버틸 수 있는 버팀목으로 활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