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은 유전자변형생물체(GMO)가 전 세계적으로 상업 재배에 들어선 지 30년이 되는 해다. 한국은 GMO 작물 재배를 허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옥수수·대두 등 수입 곡물이 사료와 가공 원료로 쓰이면서 유전자변형 식재료가 공급망에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GMO를 둘러싼 찬반 논란은 반복되고 있다. 조선비즈는 국내외 실태를 살펴보고 우리 곁에 놓인 GMO를 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불과 15년 전만 해도 유럽에서 유전자변형생물체(GMO)는 소비자들의 걱정거리였다. 유럽연합(EU) 여론조사기관 유로바로미터에 따르면 2010년 유럽 응답자의 66%가 'GMO 성분이 들어간 음식이 우려된다'고 답했다. 하지만 2025년 동일한 조사에서 GMO가 우려된다는 응답은 25%로 내려갔다. 유럽 소비자들이 GMO를 선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GMO에 대한 선입견에 변화가 생겼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유럽 내 GMO에 대한 인식 변화를 주도한 기관은 유럽식품안전청(EFSA)이다. 유럽식품안전청은 GMO 같은 규제 대상 제품의 과학적 위해성 평가를 맡고 있다. 에드워드 브레이(Edward Bray) 유럽식품안전청 홍보 담당관은 지난 21일 조선비즈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유럽식품안전청이 말하는 결론은 '안전 또는 위험' 한 줄이 아니라 제출된 자료를 바탕으로 식품·사료 안전성, 영양 변화, 환경 영향에서 확인된 내용과 추가 확인이 필요한 부분까지 정리한 과학적 판단"이라며 "위해성 평가 과정과 판단 근거를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게 공개·설명하는 데 주력해 오해를 줄이고 있다"고 말했다.
◇ EU "위해·위험 구분해 과정 설명… 과학적 불확실성 숨기지 않아"
브레이 담당관은 "유럽식품안전청의 역할은 식품·사료에 대한 위험 평가뿐 아니라 규제 대상 제품의 과학적 위해성 평가에 대한 시민과의 의사소통도 있다"고 했다. 그는 대중이 헷갈려 하는 개념으로 '위해(hazard)'와 '위험(risk)'의 차이를 꼽았다. 유럽식품안전청은 위해를 해를 일으킬 수 있는 성질이나 가능성, 위험을 그 위해가 실제 생활에서 문제가 될 가능성으로 구분해 설명한다. 상어가 바다에 있다는 사실은 위해지만, 그 바다에서 수영할 때 비로소 위험이 커진다는 식의 설명이다.
GMO 평가에서도 유럽식품안전청은 위해와 위험의 차이를 두고 의사소통에 나섰다. 브레이 담당관은 "새로 만들어진 단백질이 알레르기와 관련될 소지는 없는지, GMO로 영양 성분이 달라져 의미 있는 변화가 생길 여지는 없는지, 환경에서 특정 생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성질은 없는지 위해 요소를 먼저 점검했다"며 "이후 최종 식품에 해당 성분이 얼마나 남는지, 사람들이 얼마나 먹게 되는지, 그 수준에서 영향이 실제로 의미 있는지 등 위해 요소가 위험으로 탈바꿈될 가능성까지 소통했다"고 말했다. 그는 "GMO 논의에서 위해와 위험이 뒤섞이면, 가능성 하나만으로 GMO에 대한 결론이 위험하다고 굳어버렸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럽식품안전청은 GMO의 불확실성에 대한 오해도 풀려고 노력했다. 브레이 담당관은 "과학에서 말하는 불확실성은 '아무 것도 모른다'가 아니라, 지금 가진 자료로는 여기까지는 말할 수 있고, 이 부분은 더 확인이 필요하다는 뜻에 가깝다"며 "GMO 평가에 대한 불확실성이 곧바로 '안전하지 않다'로 읽히는 오해를 줄이기 위해, 가령 자료가 부족한 이유와 반영 방식을 같이 공개하려 했다"고 말했다.
◇ 美 소비자 교육·日 모니터링 결과 공개·英 전문가 의견 활용
미국은 GMO에 대한 선입견을 바꾸기 위해 소비자 교육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미 식품의약국(FDA)은 농무부(USDA), 환경보호청(EPA)과 함께 소비자 교육 캠페인 '피드 유어 마인드(Feed Your Mind)'를 진행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일반인들에게 유전자변형 기술과 규제 구조를 설명하고 있다. 민감한 기술 이슈에 대해 안전하다는 결론을 던지기보다, 왜 그렇게 판단하는지를 설명하는 일을 공공 사업으로 만든 것이다.
미국은 GMO 관련 표시와 정보 제공 활성화에도 적극적이다. 미 농무부는 GMO 제품에 정보를 표기하는 것을 넘어 기호, QR코드 등 다양한 형태로 소통하고 있다. 핵심은 표시 자체를 경고문으로 만드는 데 있지 않고, '더 자세한 식품 정보를 보려면 여기를 스캔하세요'와 같은 문구처럼 소비자가 필요할 때 추가 정보를 찾아갈 경로를 확보하는 쪽에 가깝다.
일본은 대규모 캠페인보다는 상시 모니터링 결과를 누적해 공개하는 방식으로 GMO에 대한 소비자 우려에 대응한다. 일본 농림수산성(MAFF)은 과거 유전자변형 식물이 확인된 항만 주변에서 유전자변형 유채 등의 생육 실태를 조사해 결과를 꾸준히 공개해 왔다. GMO 안전성 평가는 후생노동성(MHLW)이 신청을 접수하고 식품안전위원회(FSCJ)가 인체 건강 관점에서 평가하는 체계로 이뤄지는데, 식품안전위원회는 평가 결과를 누구나 볼 수 있는 리스크 평가 보고서 형태로 공개한다.
영국에서는 GMO 안전성 논란과 같은 이슈가 생길 때 과장과 오독을 줄이기 위해 전문가를 활용한다. GMO 유해성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거세던 2002년 영국에서 설립된 '영국 과학미디어센터(SMC)'는 GMO에 대한 전문가 의견을 신속히 모아 '전문가 반응' 코너로 제공했다. 정책을 홍보하기보다, 보도 과정에서 최소한의 사실관계와 맥락이 유지되도록 돕는 방식이다.
◇ 한국, GMO 완전표시제 논쟁에 가려진 절차·근거 소통
국내에서는 GMO 논의가 완전표시제를 계기로 다시 뜨거워지고 있지만, 정작 GMO 안전성 평가가 어떤 절차와 근거로 이뤄졌는지를 설명하고 소통하는 노력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GMO 완전표시제는 원료 단계에서 GMO를 사용했거나 비의도적 혼입이 확인되면, 제조·가공 이후 최종 제품에 유전자나 단백질이 남지 않더라도 표시 의무를 부과하는 제도다.
국회는 지난해 12월 GMO 완전표시제 도입을 담은 법 개정안을 통과시켰고,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올해 12월 31일 시행을 목표로 세부 기준을 정비 중이다. 논쟁의 핵심은 시행 자체보다도 무엇을, 어디까지 표시 대상에 포함할 것인가에 맞춰져 있다. 소비자의 알 권리를 강화하는 장치라는 취지임에도, 표시 문구가 일부 소비자에게는 위험 경고처럼 읽힐 수 있다는 점이 충돌하면서 공방이 커졌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GMO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표시를 할 것인가'라는 문구 싸움으로 축소되고, GMO 안전성 평가가 어떤 순서로 진행됐는지, 판단의 근거와 자료는 무엇인지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설명과 소통이 부족해졌다는 점이다.
하상도 중앙대 식품생명공학과 교수는 GMO 완전표시제 논의 상황을 'GMO 안전성과 평가 과정에 대한 소통이 거의 안 되는 상태'라고 표현했다. 그는 "정부는 GMO 안전성을 이미 정리된 문제로 보고 별도로 커뮤니케이션을 거의 하지 않는다"며 "반대 단체는 안전성 논란이 진행 중이라는 전제로 움직이는데, 규제 기관은 여기에 휘말리지 않으려 '안전은 이미 검증됐다'는 말만 남기고 넘어가는 분위기"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