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 치료제가 글로벌 제약·바이오 시장의 지형도를 바꾸고 있다. 세계 최고 매출을 지켜온 면역 항암제 '키트루다'가 지난해 처음으로 비만 치료제에 선두 자리를 내줬다는 잠정 집계가 최근 나왔다. 비만 치료제가 글로벌 제약·바이오 산업의 패권을 거머쥐는 핵심 열쇠가 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비만 치료제의 한계로 꼽히는 '요요 현상'과 '근육 감소'를 극복하려는 유전자 치료제 개발 경쟁도 치열하다.

그래픽=김현국

◇1위 블록버스터 꺾은 비만 치료제

블룸버그 컨센서스는 지난해 연간 매출이 일라이 릴리의 '마운자로'는 약 358억달러(51조5000억원), 노보 노디스크의 '위고비'는 약 356억달러(51조2000억원)로 잠정 집계됐다고 최근 밝혔다. 이는 미국 MSD(머크)의 면역 항암제 '키트루다'의 작년 잠정 매출 315억달러(45조3000억원)를 뛰어넘는 것이다. 블록버스터(연간 매출액 10억달러 이상 의약품) 중에서도 글로벌 매출 1위였던 키트루다가 1·2위를 비만 치료제에 내주게 된 것이다. 유진투자증권은 보고서를 통해 "항암제 중심 블록버스터 지형을 비만·대사 질환 치료 패러다임이 구조적으로 재편하는 신호"라고 분석했다.

비만 치료제의 성장 독주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미국에선 지난 5일 알약 형태의 '먹는 위고비'가 미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거쳐 출시됐다. '먹는 마운자로'라 불리는 오포글리프론도 FDA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주사 한 번에 비만 완치"… 유전자 치료제도 나온다

차세대 비만약 치료제 개발에도 속도가 붙고 있다. 최근 미국의 일부 바이오 기업들은 비만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유전자 치료제' 개발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현재 GLP-1 계열 치료제의 대표적 한계는 약을 끊으면 식욕이 되살아나고 체중이 다시 증가하는 이른바 '요요 현상'이다. 차세대 유전자 치료제는 요요 현상을 극복하는 약물이 될 전망이다.

미국 바이오 기업 '프랙틸 헬스'는 인체가 수년간 스스로 GLP-1 호르몬을 생성하도록 설계한 유전자 치료제 '레쥬바(Rejuva)'를 개발하고 있다. 특수 카테터(환자 몸속에 넣는 얇고 긴 튜브 형태의 의료용 관)로 췌장에 약물을 직접 주입하면, 인슐린 분비 세포가 지속적으로 GLP-1을 만들어내도록 한다. 고지방식을 먹인 쥐에게 레쥬바를 1회 투여했을 때 35일 만에 체중이 최대 29% 감소했다. 연구팀은 올해 안으로 인체 임상시험에 착수한다는 계획이다.

체중 감량 시 근육까지 빠지는 부작용을 막기 위한 '표적 치료' 연구도 활발하다. 미국 '웨이브 라이프 사이언스'는 지방 저장을 유도하는 'INHBE' 유전자의 활동을 억제하는 주사제를 개발 중이다. 임상 1상에서 12주 만에 내장 지방은 9% 줄어들고, 근육량은 늘어나는 효과를 보였다. '애로우헤드 파마슈티컬스'도 같은 유전자를 겨냥한 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임상 1상 중간 결과, 24주 동안 투여했을 때 참가자들의 내장 지방이 평균 15.6%까지 줄어들었다고 한다.

업계는 이 같은 유전자 치료제가 차세대 비만 치료제로 각광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비만 환자 중엔 약값을 감당하기 힘들어 GLP-1 약물을 중단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만큼, 한 번 투약으로 지속적 효능을 볼 수 있는 유전자 치료제로 환자들이 몰릴 것이라는 분석이다.

다만 비만을 해결하는 유전자 치료제 개발 난도가 높고,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일각에선 "유전자 치료를 통해 고농도의 GLP-1이 몸 속에서 계속 생성될 경우,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