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KAIST 물리학과 라영식 교수팀은 빛을 이용하는 양자컴퓨터가 연산을 하며 작동할 때 그 내부를 CT 촬영하듯 명확하게 들여다보고 분석할 수 있는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이를 '양자연산 토모그래피(tomography)'라고 한다. 안에 있는 것을 직접 열어보지 않고도 여러 각도에서 얻은 정보로 내부 구조를 복원하는 기술이다.
그동안 빛을 이용해 계산하는 광학 기반 양자컴퓨터는 빠른 속도와 높은 확장성 덕분에 차세대 컴퓨팅 기술로 주목받았지만, 실제로 이 양자컴퓨터 안에서 어떻게 연산을 수행하는지는 지금까지 실험적으로 확인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연구팀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빛이 양자컴퓨터 안에서 어떻게 변하는지를 두 가지로 나눠서 면밀하게 관찰했다. ▲빛이 연산을 거치며 원래 의도한 대로 얼마나 커지고 바뀌는지, ▲실제 실험 환경에서 어쩔 수 없이 섞이는 손실과 잡음이 어느 정도인지를 본 것이다.
이렇게 나눠서 살펴본 결과, 기존에는 빛 신호가 5개만 돼도 분석이 어려웠던 복잡한 연산을, 이번에는 최대 16개의 빛 신호가 동시에 얽힌 경우까지 실험으로 확인하는 데 성공했다.
연구팀은 이 기술이 대규모 양자 컴퓨터의 신뢰성을 검증하는 데 활용돼, 앞으로 양자 컴퓨팅은 물론 양자 통신과 양자 센싱 기술로까지 확장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2023년 2월부터 시작한 KAIST 양자대학원이 차세대 양자 연구 및 양자 인재 양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과 공동 운영 체계를 만들고 학위 교육·연구도 시작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과 'KAIST–MIT 양자정보 겨울학교'도 운영하고 있다. KAIST와 MIT 교수진이 직접 강의와 토론에 참여한다. 지난해 12월 3일엔 국가 양자 팹 연구소를 열고, 국내 최대 규모의 개방형 양자 소자 전용 구축에도 착수했다.
연구도 활발하다. 안재욱 물리학과 교수는 '리드버그 원자'라 불리는 중성 원자를 활용해 양자 컴퓨터의 규모를 획기적으로 키우는 기술을 개발했다. 아주 작은 원자를 자유자재로 배치하고 연결해 성능이 강력한 대규모 양자 컴퓨터를 만드는 것으로, 기본 단위인 큐비트를 원하는 위치로 옮겨 계산 규모를 획기적으로 키우는 핵심 기술이다. 이론에 머물던 양자 컴퓨터를 실용화 가능한 수준으로 대형화하는 데 필수적인 연구로 평가받는다.
최재윤 물리학과 교수는 중성 원자를 이용한 양자 시뮬레이션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다. 그는 원자를 영하 273도에 가까운 극저온 상태로 얼린 뒤, 레이저 그물망인 광격자에 가둬 복잡한 양자 현상을 실제와 똑같이 재현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컴퓨터로 계산하기 힘든 미세한 물리 법칙을 눈으로 확인하듯 분석할 수 있게 해주는 기술이다.
유경식 전기및전자공학부 교수는 양자 기술이 실험실을 넘어 실제 기기에 적용될 수 있게 공학적 가교 역할을 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아주 작은 양자 소자를 정밀하게 만들고 이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통합하는 연구를 통해, 실제 구동 가능한 '양자 시스템'을 완성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김갑진 물리학과 교수는 원자 속에 들어 있는 아주 작은 자석인 '스핀'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다. 양자 컴퓨터는 이 미세한 자석들의 방향이나 움직임을 이용해 정보를 처리하는데, 김 교수는 이 자석들이 물질 안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근본 원리를 밝혀내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전기가 아닌 자석의 힘으로 움직이는 차세대 양자 소자의 기초를 다지는 일로, 국제 학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지난해 말엔 국가 양자 팹도 개소했다. 연구자가 설계도만 내는 것을 넘어 공장은 다양한 형태의 양자 컴퓨터 부품을 만들고 새로운 제작 기술을 연구하는 핵심 거점으로 기능하도록 하겠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