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잎 끝에 모인 남가뢰 애벌레들. 꽃 향기를 뿜어 꿀벌을 유인한다./Brenda Black, iNaturalist

딱정벌레인 가뢰는 쑥이나 양배추를 갉아먹는 초식성 곤충이지만, 일부 종(種)은 꿀벌의 알을 잡아먹는 육식을 한다. 날개도 없는 딱정벌레가 어떻게 벌집에 들어갈 수 있을까. 철통같은 방어망도 꽃뱀에는 소용없었다. 꿀벌은 가뢰가 내는 꽃향기에 속고 짝으로 둔갑한 모습에 홀렸다.

독일 막스 플랑크 화학생태학연구소의 토비아스 쾰너(Tobias G. Köllner) 박사 연구진은 유럽에 사는 남가뢰(학명 Meloe proscarabaeus) 애벌레들이 꽃향기를 내뿜어 꿀벌을 유인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지난 15일 발표했다. 동물이 꽃 향기를 모방한 사례는 처음 확인됐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연구 결과는 학술지에 발표되기 전에 사전 공개 사이트인 바이오아카이브(bioRxiv)에 먼저 실렸다.

◇줄기 끝에서 꽃 향기 뿜어 꿀벌 유인

가뢰는 영어로 물집벌레(blister beetle)라고 불린다. 날개가 퇴화해 천적을 만나면 날아서 도망가지 않고 물집을 유발하는 칸타리딘을 분비하기 때문이다. 이 물질은 중세 유럽에서는 최음제로도 쓰였다. 이번에 연구한 남가뢰는 가뢰과(科) 곤충으로 이름대로 몸이 남색을 띤다.

나뭇가지나 풀잎 끝에 모인 가뢰 애벌레들은 다가온 꿀벌에 달라붙는다. 목적은 성충이 아니다. 꿀벌 등에 무임승차하고 벌집 안으로 들어가 알들을 잡아먹는다. 꿀벌들이 자식에게 먹이겠다고 모아둔 꿀과 꽃가루까지 먹어 치운다. 다 자라면 벌집 밖으로 나와 잎을 먹고 산다.

남가뢰 유충(위)과 성충. 어릴 때는 벌집 안에서 꿀벌의 알을 잡아 먹지만, 성충이 되면 식물 잎을 먹고 산다./위키미디어 커먼스

연구진은 꿀벌이 왜 가뢰 애벌레를 찾아가는지 알아보기 위해 먼저 성충들을 잡아 실험실에서 키웠다. 딱정벌레는 짝짓기하고 나서 땅속에 알을 낳았다. 3주 후 알에서 깨어난 3㎝ 남짓한 애벌레들은 앞다퉈 식물의 줄기 끝으로 기어 올라갔다. 연구진은 자연에서 줄기 끝에 모인 애벌레들에 꿀벌이 꼬인다는 점에서 뭔가 유인물질을 분비한다고 추정했다.

가스크로마토그래피 장비로 애벌레에서 나오는 기체 성분을 분석한 결과, 가벼운 분자인 모노테르페노이드가 검출됐다. 곤충에는 드물고 식물에 흔한 물질이다. 그중 양이 많았던 리나룰 옥사이드와 라일락 알데하이드는 꽃이 꿀벌과 나비를 유인할 때 분비하는 화합물이었다. 쾰너 박사는 "예상 밖의 분석 결과를 보고 '이건 곤충이 아니라 꽃'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실제로 꿀벌이 꽃향기에 끌려 애벌레를 찾는지 확인하기 위해 실험을 했다. Y자 통로 한쪽 끝에는 남가뢰 애벌레, 다른 쪽에는 밀싹을 두고, 입구로 단독 생활을 하는 꿀벌인 뿔가위벌(Osmia bicornis)을 넣었다. 암수 모두 밀싹보다 애벌레 쪽을 택했다. 꿀벌은 늘 밀싹보다 꽃을 더 찾는다. 꿀벌은 남가뢰 애벌레를 꽃으로 착각한 것이다.

연구진은 가뢰 애벌레가 꽃향기 성분을 만드는 합성 경로도 확인했다. 이를 모방해 애벌레에서 추출한 모노테르페노이드를 인공 합성했다. 인공 향기 역시 뿔가위벌뿐 아니라 땅에 둥지를 트는 어리꿀벌(Colletes similis)과 서양뒤영벌(Bombus terrestris), 양봉에 쓰는 꿀벌(Apis mellifera)까지 모두 유인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미국 사막에 사는 남가뢰 애벌레들은 나뭇가지 끝에 모여 꿀벌 암컷 흉내를 낸다(a). 암컷으로 착각한 꿀벌 수컷이 다가오면 등에 올라탄다(b). 수컷이 진짜 암컷과 짝짓기하면 암컷으로 옮겨 타고 벌집으로 침입한다(c)./네이처

◇암컷 꿀벌 모습 흉내 내 수컷 부르기도

가뢰는 이미 꿀벌을 속이는 데 선수라고 알려졌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주립대의 존 하퍼닉(John Hafernik) 교수 연구진은 지난 2000년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모하비 사막에 사는 남가뢰(Meloe franciscanus) 애벌레들이 꿀벌 암컷으로 위장해 벌집에 침투한다고 발표했다.

사막에 사는 남가뢰는 땅속에 알을 낳는데 보통 수천 마리의 애벌레가 동시에 깨어난다. 애벌레들은 곧 근처 나뭇가지나 풀잎 끝으로 기어오른다. 애벌레들은 서로 뭉쳐 공 모양을 이루는데 사막에서 단독 생활을 하는 수컷 꿀벌은 이를 암컷으로 착각하고 짝짓기하러 달려든다. 순간 애벌레들은 수컷의 등에 올라탄다.

문제는 짝짓기를 마친 꿀벌 수컷은 벌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왕벌과 일벌만 벌집을 드나들 수 있다. 수컷 등에 무임승차한 가뢰 애벌레는 암컷으로 환승해야 한다는 말이다. 애벌레는 꿀벌 수컷이 진짜 암컷과 짝짓기하는 순간을 노려 암컷으로 옮겨갔다. 결국 애벌레들은 암컷을 타고 유유히 벌집에 침입한다.

막스 플랑크 연구소 과학자들은 이 점에서 유럽에 사는 남가뢰는 꽃향기로 바로 일벌인 암컷을 불러 벌집까지 가는 데 환승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유럽 남가뢰 애벌레는 주황색을 띠어 시각적으로도 꽃으로 착각하게 하는 효과를 거둔다고 밝혔다.

유럽에서 꿀벌 난초로 알려진 난초과 식물인 오프리스 아피페라(Ophrys apifera). 꽃 모양이 꿀벌 암컷처럼 진화해 꿀 없이도 수컷을 끌어들인다./위키미디어 커먼스

◇꿀벌의 짝짓기 신호 물질까지 모방

식물도 꿀벌을 속인다. 난초는 꽃 모양이 꿀벌 암컷처럼 진화해 꿀 한 방울 주지 않고도 수컷을 끌어들인다. 난초의 꽃뱀 전략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난초는 꿀벌 암컷이 분비하는 페로몬도 모방해 수컷을 유혹한다. 페로몬은 곤충들이 짝을 찾거나 동료에게 경고 신호를 보낼 때 몸 밖으로 분비하는 물질이다.

가뢰 애벌레 역시 난초처럼 화학무기도 갖고 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생태계보존연구소의 레슬리 사울-게르센츠(Leslie Saul-Gershenz) 박사는 2006년 '미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한 논문에서 미국에 사는 남가뢰 애벌레들이 꿀벌 수컷을 속이기 위해 모양뿐 아니라 페로몬까지 모방한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실험 결과 가뢰 애벌레들이 줄기 끝에 모인 것과 똑같은 모양의 구조물이 있어도 애벌레나 꿀벌 암컷의 분비물을 바르지 않으면 수컷 꿀벌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가뢰 애벌레들은 꿀벌 암컷 모양을 흉내 내면서 동시에 페로몬 농도를 진하게 하려고 수천 마리가 뭉치는 것이라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가뢰 애벌레들의 이중삼중 사기에 안 넘어갈 꿀벌이 있을까.

참고 자료

bioRxiv(2026), DOI: https://doi.org/10.64898/2026.01.15.699641

PNAS(2006), DOI: https://doi.org/10.1073/pnas.0603901103

Nature(2000), DOI: https://doi.org/10.1038/3501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