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기능이 퇴행하는 알츠하이머 증상을 이미지로 표현한 그림. /조선일보 DB

캐나다 토론토대 신경학과 교수이자 전문의인 도널드 위버(Weaver)는 오랫동안 '알츠하이머 환자 중에 암 병력자가 거의 없다'는 사실에 의문을 품어왔다고 했다.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사람 대부분은 암에 걸린 적이 없다는 것이다. 위버는 "실제로 현장에서 수천 명의 알츠하이머 환자를 진료했지만 암 병력이 있었던 환자는 단 한 명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의과학자들은 이처럼 암과 치매를 동시에 겪는 사례가 드물다는 점에 주목해, 두 질환 중 하나가 다른 질병의 발생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최근 중국 과학자들이 15년에 걸친 장기 연구 끝에 이 가설이 타당함을 입증하는 동물 실험 결과를 국제 학술지 '셀(Cell)'에 발표했다.

◇암세포가 치매 유발 단백질 분해한다

실제로 2020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미시간대 역학팀의 연쇄 역학 조사 결과도 이러한 가설을 뒷받침한다. 2020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와 미시간대 공동 연구팀이 960만명의 대규모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암 진단 병력이 있는 집단은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알츠하이머 발생 확률이 평균 11% 낮았다.

중국 화중과기대 루 유밍 교수팀은 이 메커니즘을 확인하기 위해 알츠하이머 모델 생쥐에게 인간의 폐암, 전립선암, 대장암 세포를 이식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분석 결과, 암에 걸린 쥐들에게서는 알츠하이머의 전형적인 특징인 '뇌 플라크'가 관찰되지 않았다. 플라크는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이 뇌에 비정상적으로 뭉쳐 뒤엉키면서 생기는 노폐물 덩어리다.

◇ 치매 억제의 핵심, '시스타틴 C' 단백질

연구팀은 먼저 암과 알츠하이머를 동시에 연구할 수 있는 생쥐 모델을 오랫동안 찾았다. 이후 알츠하이머병 모델 생쥐에 인간의 폐암, 전립선암, 대장암을 이식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분석 결과, 암에 걸린 쥐들에게선 놀랍게도 알츠하이머병의 특징인 뇌 플라크가 보이질 않았다. 플라크는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이 뇌에 비정상적으로 뭉쳐 뒤엉키면서 생기는 덩어리를 말한다.

연구팀은 암세포가 분비하는 특정 단백질을 정밀 분석했다. 이 과정에서 혈액뇌장벽(BBB)을 통과할 수 있는 '시스타틴 C' 단백질이 뇌 플라크를 분해하는 면역 세포 단백질(TREM2)을 활성화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즉, 암세포가 내뿜는 특정 성분이 치매를 유발하는 독성 단백질의 축적을 막은 셈이다.

연구팀은 "이번 동물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새로운 형태의 알츠하이머병 치료법을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암세포 단백질의 원리를 역으로 이용하면 혁신적인 치매 치료제 설계가 가능할 것이라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