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전 대전 KAIST(카이스트) 본원 학술문화관 2층 양승택 오디토리움에서 강연하는 이광형 KAIST 총장. /KAIST

"예전 우리는 텔레비전이 잘 안 나오면 툭툭 때렸습니다. 그걸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죠. 만약 우리가 인공지능(AI) 로봇 비서와 함께 지내다 그때도 마음에 안 들 때마다 로봇 비서의 뺨을 때려도 될까요?"

21일 오전 대전 KAIST(카이스트) 본원 학술문화관 2층 양승택 오디토리움. 연단에 선 김동우 KAIST AI 철학연구센터장이 청중을 향해 이런 질문을 던지자 분위기가 잠시 술렁거렸다. 김 센터장은 "사소해 보이지만 AI 대전환 시대에 앞으로 우린 계속 이런 새로운 질문과 마주할 수밖에 없다. 그때마다 답을 얻으려면 철학이 필요하다"고 했다. AI 철학연구센터는 AI 시대에 인문학자와 과학자가 함께 모여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고민하고 해법을 찾겠다는 취지로 KAIST가 이달 초 설립했다. 이날 연구센터는 '문명의 전환과 철학의 과제-포스트 AI·로보틱스 시대의 인간·사회·기술 설계'를 주제로 개소 기념 국제심포지엄을 열었다. 인문학자·공학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AI·로보틱스 기술이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철학과 인문학의 역할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자리다.

◇"AI와 관계, 지금 재설정해야"

참석자들은 인류가 지금부터 선제적으로 인공지능·로보틱스와 동반자적 관계를 고민하지 않으면 앞으로 큰 혼란에 빠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기조연설자로 나선 야스오 데구치 교토대 문과대학원 학장 겸 교토철학연구소장은 "과거 서구 중심 사회에선 인간 개인의 능력(capability)을 중요하게 여겼지만, 미래 사회에선 '인간은 그를 둘러싼 세상과 AI와도 협력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존재(incapability)'임을 더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인간은 앞으로 AI의 도움 없이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함께 '우리(we) 공동체'를 꾸릴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광형 KAIST 총장은 '휴머니즘 2.0'을 제안했다. 이 총장은 "인류 역사는 휴머니즘 확장의 역사와도 같다"고 했다.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부터 20세기 여성 해방 운동까지 휴머니즘의 주체는 성인 남성에서 귀족, 시민, 노동자, 여성까지 확장되어 왔으니, 앞으로는 여기에 AI와 로봇을 새로운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휴머니즘 2.0'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총장은 "AI는 점점 더 똑똑해질 거고, 인간이 다루기엔 너무나 강력한 도구가 될 테니, AI를 잘 통제하기 위해서라도 선제적으로 AI를 인간 파트너로 받아들이고 이에 맞는 새로운 윤리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인간 존엄성에 기반한 인문학 연구를 통해 AI 통제 기술을 개발해야 인류가 AI에 지배당하지 않고 함께 살 수 있다는 주장이다.

박성필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장은 법학자 관점에서 AI 시대를 이야기했다. 그는 "급진적인 기술 변화 시기일수록 우리는 새로운 사회 계약이 필요하고, 그 토대를 법이 제공할 것"이라면서 "이럴 때일수록 인간이 AI에게 위임해서 안 되는 권한은 무엇인지, AI 때문에 생기는 모든 사회적 사건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질 것인지를 정의해야 한다"고 했다.

◇"인간보다 뛰어난 로봇? 인간과 교감하는 로봇"

김정 KAIST 기계공학과 학과장은 공학자의 입장에서 앞으로 AI 로보틱스를 개발할 때 '인간다움'이 더욱 중요한 키워드가 될 것이라고 했다. 김 학과장은 "로보틱스는 이미 특정 영역에선 인간 능력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앞으로 더 뛰어난 능력치를 보여주는 것을 넘어, 사람과 더 잘 소통하고 사람에게 호감을 주는 로보틱스 설계가 중요해질 것"이라고 했다. 로봇이 인간과 비슷해질수록 사람은 로봇에게서 섬뜩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데, 이를 두고 1970년 일본 로봇공학자 모리 마사히로는 '불쾌한 골짜기'라고 표현한 바 있다. 이 불쾌한 골짜기를 넘어서, '반려 로봇'으로 나아가려면 인간과 정서적 교감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 학과장은 "로보틱스가 궁극적으로 성공하려면 결국 인간다움이 무엇인지를 더 깊이 고민해야 한다는 얘기"라고 했다.

김 센터장은 "급변하는 기술을 따라가기에만 급급하면 우리는 계속 불안할 수밖에 없다"면서 "철학적 질문이 뒷받침되지 않는 과학 기술은 동력을 유지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또한 "미국은 일찌감치 AI와 로보틱스, 우주 기술을 왜 혁신해야 하는지, 이를 통해 무엇을 얻을지 확실하게 생각하고 정해놓은 나라"라며 "우리도 기술 혁신을 통해 무엇을 얻고 싶은지, 어떤 세상을 원하는지, 그 청사진부터 함께 이야기하고 공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