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우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 연구진은 카이스트, 영국 케임브리지대 등과 함께 차세대 디스플레이용 발광체인 '페로브스카이트 나노결정'의 수명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린 새로운 기술을 개발했다. 해당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의 표지 논문으로 선정됐다./사이언스

디스플레이 소재는 잘 빛나면 오래 못 가고, 오래 가면 성능이 떨어지는 딜레마가 따라붙는다. 그런데 국내 연구진이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찾았다.

이태우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 연구진은 카이스트, 영국 케임브리지대 등과 함께 차세대 디스플레이용 발광체인 '페로브스카이트 나노결정'의 수명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린 새로운 기술을 개발했다고 16일 밝혔다. 연구 결과는 이날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게재됐으며, 표지 논문으로선정됐다.

페로브스카이트 나노결정은 빛을 매우 선명하게 내는 소재로, 색 순도(색이 얼마나 깨끗한지)와 색 구현 범위, 가격, 빛 흡수 능력, 소비 전력 등에서 기존 양자점 발광체보다 유리하다고 평가받는다. 양자점은 머리카락 굵기보다 훨씬 작은 반도체 입자다. 하지만 페로브스카이트는 결정 격자가 비교적 부드러운 이온 구조로 이뤄져 열·습기 등에 약하고, 오래 쓰기가 어렵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이태우 교수는 조선비즈와의 통화에서 "페로브스카이트는 태양전지로 많이 쓰이는 재료로 알려졌는데, 결정 구조가 소금처럼 이온 결합 기반이라 실리콘에 비해 약하다"며 "열이나 빛에 노출되면 결정 격자가 흔들리고, 그 과정에서 결함이 생기거나 성능이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이 같은 약점을 해결하기 위해 페로브스카이트 나노결정을 여러 겹의 보호막으로 감싸는 방식을 고안했다. 이 교수는 "주사위 모양의 페로브스카이트 결정 바깥에 실리카, 고분자 등의 보호막을 연속으로 씌웠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보호막이 페로브스카이트 결정 격자와 잘 맞물려 붙어 있으면서 결정의 움직임을 줄여 수명이 늘어났다. 동시에 나노결정 표면의 빈틈을 메워서 빛이 새거나 소재가 빨리 망가지는 경로를 차단했다.

이번에 개발한 페로브스카이트 나노결정의 외부 양자 수율(EQY)은 91.4%를 나타냈다. 외부 양자 수율은 투입한 전기 대비 밖으로 나온 빛의 비율로, 발광 성능 지표 중 하나로 쓰인다. 또 고온다습한 환경에서도 3000시간 이상을 견뎠다.

이 교수는 "양자점을 포함한 기존 형광체를 거의 50년 가까이 연구했지만 외부 양자 수율을 65% 이상으로 높일 수 없었다"며 "이번 연구로 이론적 한계치까지 끌어올렸다"고 덧붙였다.

이번 소재의 또 다른 강점으로는 초고해상도 패터닝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3500 PPI(pixels per inch) 이상의 초고해상도 패터닝이 가능해, 픽셀 밀도가 특히 중요한 증강현실(AR)·가상현실(VR) 디스플레이에 적합하다. 초고화질 TV는 물론, 몸에 붙이는 헬스케어 디스플레이 같은 웨어러블 분야로의 확장도 기대해 볼 수 있다.

이 교수는 "태블릿 디스플레이나 모니터, 75인치 TV에 적용해 상용화할 수 있는 기술이라는 것을 확인했다"고 했다. 다만 "이번에는 높은 해상도까지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단계"라며 "소재와 공정을 다듬어 수명과 광변환 효율을 더 높인 뒤 AR, VR에 적용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연구진은 지난 15일 네이처에도 디스플레이 관련 성과를 발표했다. 해당 논문에서 연구진은 잡아당겨도 성능이 유지되는 플렉시블(flexible) OLED를 구현했다. 연구진은 전하가 빛으로 효율적으로 바뀌도록 새 발광층을 설계하고, 열가소성 폴리우레탄으로 신축성을 높였으며, 투명하면서도 잘 늘어나는 전극을 만들었다. 그 결과 소자는 원래 길이의 1.6배까지 늘려도 빛을 대부분 유지했다.

이태우 교수는 "페로브스카이트의 효율과 안정성을 동시에 확보한 사이언스 논문, 늘려도 고효율을 유지하는 OLED를 구현한 네이처 논문은 각각 독립적으로 의미가 크다"며 "한 연구실에서 세계적 난제를 동시에 해결한 이번 성과가 한국 디스플레이 기술의 경쟁력을 다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참고 자료

Science(2026), DOI: https://doi.org/10.1126/science.ady1370

Nature(2026), DOI:https://doi.org/10.1038/s41586-025-099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