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플랫폼 '클로저'. [KAIST 제공]

KAIST 연구진이 인공지능(AI)으로 '말하지 않아도' 우울증 상태를 알아내는 기술을 개발했다. 설문이나 면담에 의존하던 기존 방식과 달리, 일상 행동만 보고 우울증을 구별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KAIST는 생명과학과 허원도 석좌교수 연구팀이 동물의 일상 행동을 AI로 분석해 우울증을 객관적으로 진단하고, 치료 효과까지 평가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13일 밝혔다.

◇우울증, 왜 진단이 어려웠을까

우울증 진단은 지금까지 환자의 말과 설문에 의존해왔다. 하지만 '우울하다'는 감정은 사람마다 다르고, 표현도 제각각이다. 이 때문에 진단이 늦어질 수도 있고 정확도가 떨어질 수도 있다.

연구팀은 다른 점에 주목했다. 우울증이 있으면 걷는 방식이나 움직임, 자세 같은 행동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를 '정신운동 변화(psychomotor)'라고 부른다.

연구진은 먼저 실험 동물의 움직임과 자세를 3차원으로 정밀 분석하는 AI 플랫폼 '클로저(CLOSER)'를 만들었다. 이 AI는 사람이 눈으로는 알아채기 힘든 아주 미세한 행동 변화까지 자동으로 잡아낸다.

연구팀은 우울증과 가장 비슷한 만성 스트레스를 겪는 동물 모델을 만들어 실험을 진행했다. 실험용 쥐에 스트레스를 주어 우울증 유사 증상을 보이도록 했다는 얘기다. 이후 이 동물의 행동을 AI로 분석했다. 그 결과, AI는 생쥐의 행동만으로도 우울증 여부는 물론이고 성별과 증상의 심한 정도까지 정확히 구분해 냈다.

흥미로운 점도 나왔다. 수컷 생쥐는 우울해질수록 탐색이나 회전 행동이 줄었고, 암컷 생쥐는 오히려 이런 행동이 늘었다. 스트레스에 오래 노출될수록 이런 차이는 더 뚜렷해졌다.

AI는 스트레스의 원인도 구별했다. 연구팀은 우울증의 원인에 따라서도 행동이 달라지는지 살펴봤다. 그 결과, 스트레스나 염증을 겪는 우울증 모델에서는 행동 변화가 뚜렷했지만, 스트레스 호르몬만 투여한 경우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몸 전체에 염증이 생기고 스트레스 경험이 쌓이는 '복합 원인' 우울증을 겪을수록 행동까지 달라진다는 것. 뒤집어 말하면 행동만으로 '만성 스트레스형 우울증인지' '염증 기반 우울증인지' '단순 호르몬 변화인지' 등을 알 수 있다는 얘기다.

◇"어떤 약이 잘 듣는지도 행동이 말해줘"

연구진은 또한 항우울제마다 행동 회복 방식이 다르다는 사실도 AI 분석을 통해 발견했다. 가령 어떤 약을 썼을 땐 처음 보는 공간에 들어가는 등 새로운 것을 탐색하는 활동을 다시 하기도 했고, 다른 약을 썼을 땐 활동량이 늘기도 했다. AI가 이 같은 차이를 모두 분석해, 약물에 따른 '행동 지문(behavioral fingerprint)'을 만들어냈다는 얘기다. 앞으로는 행동 변화를 보면서 어떤 항우울제가 그 사람에게 가장 잘 맞는지를 이를 통해 예측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허원도 석좌교수는 "AI로 일상 행동을 분석해 우울증을 진단하고 치료 효과까지 평가하는 전임상 시스템을 세계 최초로 구현했다"면서 "정신질환 맞춤 치료와 정밀의료로 가는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