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에르토리코 카요 산티아고 섬에 사는 붉은털원숭이(Macaca mulatta) 236마리를 3년간 추적 관찰한 결과 수컷의 72%가 동성 간 성적 행동을 했다./영국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

인간과 가까운 영장류들도 동성애(同性愛)가 흔하며, 이런 특성이 유전되기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성애가 '자연의 섭리에 어긋난다'는 의견과 반대되는 결과이다. 과학자들은 기존 생각과 달리 영장류 사회에서 동성애가 환경 변화에 적응하고 후손을 남기는 데 유리한 행동으로 진화했다고 분석했다.

빈센트 사볼라이넨(Vincent Savolainen)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ICL) 생물학과 교수 연구진은 "비인간 영장류 491종을 연구한 결과를 분석한 결과, 59종에서 동성 간 성적 행동의 증거를 발견했으며, 일부는 유전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13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 생태학과 진화'에 발표했다.

사볼라이넨 교수는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동성 간 성적 행동을 우연이나 드문 현상, 또는 동물원의 동물에게만 나타나는 것으로 여겼다"며 "이번 연구는 그런 행동이 영장류의 정상적인 사회생활의 일부임을 밝혔다"고 말했다. 그는 동성 간 성적 행동이 영장류에서 오래 전부터 여러 차례 독립적으로 진화했음을 의미한다고 덧붙였다.

◇고대 그리스처럼 남성 간 동성애가 주류

인간 사회에서 동성애의 역사는 길다. 고대 그리스 사회는 남성 간 동성애를 금기시하지 않고 오히려 장려했다. 나이 든 남성과 소년의 동성애가 이상적인 사랑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성적인 측면보다 교육적, 사회적 의미를 지닌 스승-제자 관계로 여겼다.

인간과 같은 다른 영장류도 마찬가지였다. 연구진은 인간 이외의 영장류 491종에 대한 96편의 연구 결과를 분석한 결과 59종에서 동성 간 성적 행동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23종은 동성애 행동이 반복적으로 관찰됐다.

원숭이들도 고대 그리스 사회와 마찬가지로 수컷 간 동성애가 주류였다. 앞서 연구진은 2023년 같은 학술지에 푸에르토리코 카요 산티아고 섬에 사는 붉은털원숭이(Macaca mulatta) 236마리를 3년간 추적 관찰한 결과 수컷의 72%가 동성 간 성적 행동을 했다고 밝혔다. 이성 간 성행위(46%)보다 오히려 빈도가 높았다.

기존 진화 이론에 따르면 동성애는 자손 번식에 도움이 되지 않아 도태됐어야 한다. 이번 연구 결과는 그와 달랐다. 동성 간 성행위를 하는 수컷들이 이성과의 성행위에도 적극적이었으며, 결과적으로 더 많은 자손을 퍼뜨리는 경향이 확인됐다.

연구진은 동성애가 단순한 실수나 비정상이 아니라,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적응 전략일 수 있다고 추정했다. 시나리오는 이렇다. 수컷끼리의 성적 접촉은 유대감을 강화한다. 그러면 서열 싸움이 발생했을 때 서로를 돕는 강력한 동맹을 만들 수 있다. 동성 간 유대감이 강한 개체는 사회적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이 크고, 이는 결국 암컷과 짝짓기할 기회를 높인다.

그래픽=정서희

◇환경 영향 크지만, 유전적 요인도 6% 관여

연구진은 영장류의 동성애가 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분석했다. 바르바리원숭이(Macaca sylvanus)는 식량이 부족하거나 가뭄이 이어지는 환경에서 동성 간 성적 행동이 증가했다. 버빗원숭이(Chlorocebus pygerythrus)는 천적에 잡아먹힐 위험이 클 때 수컷 간 동성애 행동이 더 흔히 목격됐다. 생존이 힘들 때 동성애 행동이 증가한다는 말이다.

스트레스가 많은 환경에서 동성 간 성적 행동이 늘어난다는 것은 그 행동이 적응의 결과임을 시사한다. 동성 간 성적 행동이 오로지 쾌락을 위해 행해진다면, 스트레스가 많은 환경에서는 그런 행동이 줄었어야 한다. 연구진은 "추운 기후에 적응한 황금들창코원숭이(Rhinopithecus roxellana)의 경우 동성 간 성적 행동이 유대감을 강화하는 털고르기와 함께 발생하는 경향이 있다"고 밝혔다.

동성 간 성적 행동이 암수를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이는 곤충 같은 단순한 동물에게는 사실일 수 있으나, 영장류나 돌고래 같은 지능이 높은 동물에게는 적용하기 어려웠다.

실제로 이번 연구 결과 동성애를 하는 영장류는 인간처럼 암수 구별이 확실하고 사회 구조가 복잡한 것으로 나타났다. 산악고릴라(Gorilla beringei)처럼 암수의 크기나 외모가 크게 다르고 침팬지(Pan troglodytes)처럼 오래 사는 종, 또 복잡한 사회 체계와 위계 구조를 가진 개코원숭이에서도 동성애가 흔히 관찰됐다.

연구진은 동성 간 성적 행동이 단순한 적응 행동이 아니라 환경과 유전 요인이 서로 얽히면서 진화했다고 추정했다. 각 개체의 동성애 특성은 환경적 요인에 의해 형성되며, 이들이 모여 사회 구조가 복잡해지면서 동성애 특성이 후대까지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연구진은 같은 맥락으로 고대 인류나 현대인의 동성애도 설명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잔나 클레이(Zanna Clay) 영국 더럼대 심리학과 교수는 "이번 연구는 동성 간 성적 행동이 드물거나 비정상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이 포함된 영장류 사회에서 흔하고 중요한 부분임을 보여준다"며 "이번 분석을 동물계의 다른 구성원들로 확장하고 유사한 가설이 성립하는지 검증하는 것은 매우 흥미로울 것"이라고 평가했다.

일본원숭이 암컷들의 동성 간 성적 행동들./ Archives of Sexual Behavior

다만 이번 연구는 인간의 성적 지향성이나 정체성 또는 실제 경험을 직접 논의하지는 않았다. 연구 결과를 바로 인간에게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말이다.

영국 런던 자연사박물관의 과학저술가인 조쉬 데이비스(Josh Davis)는 "동물 행동을 연구하는 다른 연구와 마찬가지로, 자연에서 동성애가 널리 퍼져 있다는 결과를 인간 행동으로 연결하기는 매우 어렵다"며 "인간은 복잡하며 다른 동물과는 별개로 다양한 요인의 결과물이기 때문에, 이러한 비교와 추론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했다.

분석 대상이 한정됐다는 지적도 나왔다. 영국 뱅거대의 이자벨 윈더(Isabelle Winder) 교수는 이날 같은 저널에 실린 논평 논문에서 "처음으로 인간과 유사한 행동의 복잡한 진화 과정을 입증했다"면서도 "이번 연구 결과는 한쪽 성과 특정 영장류 데이터에 국한됐다"고 지적했다.

일례로 붉은털원숭이와 같은 속(屬)인 일본원숭이(Macaca fuscata)는 수컷보다 암컷이 동성애에 적극적이다. 수컷이 옆에 있어도 암컷 파트너를 선택할 정도다. 침팬지와 가까운 영장류인 보노보(Pan paniscus)도 마찬가지다. 일본원숭이·보노보 암컷들은 동성애로 긴장과 사회적 갈등을 해소한다고 알려졌다.

참고 자료

Nature Ecology & Evolution(2026), DOI: https://doi.org/10.1038/s41559-025-02945-8

Nature Ecology & Evolution(2026), DOI: https://doi.org/10.1038/s41559-025-02940-z

Nature Ecology & Evolution(2023), DOI: https://doi.org/10.1038/s41559-023-02111-y

Archives of Sexual Behavior(2024), DOI: https://doi.org/10.1007/s10508-023-02781-6

Archives of Sexual Behavior(2002), DOI: https://doi.org/10.1023/A:10140791178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