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 무늬 도마뱀(side-splotched lizard)'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파충류다. 봄이 되면 수컷의 목둘레 빛깔이 개체별로 화려하게 달라진다. 같은 종(種)인데도 파란빛, 주홍빛, 노란빛 등 목둘레 색이 달라 확연히 구별된다.
옆 무늬 도마뱀의 수컷이 이처럼 각기 다른 빛깔로 몸을 바꾸는 이유가 유전자가 다르기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유전자 영향으로 목둘레 색도 달라지고 성향도 다르다는 분석이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통합생물학과 아몬 콜 교수팀은 연구 결과를 지난 1일(현지 시각)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옆 무늬 도마뱀의 목둘레 빛깔은 오랫동안 과학계 관심을 모았다. 1990년대 초반 캘리포니아대 진화생물학과 베리 시너보 교수팀은 이들 목둘레 빛깔이 짝짓기 경쟁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발견했다. 주황색 수컷은 짝짓기 경쟁에서 파란색 수컷을, 파란색 수컷은 노란색 수컷을 이기는 경향이 있었다. 또한 노란색 수컷은 파란색과의 경쟁에선 밀리지만, 자기만의 방식으로 주황색 수컷과의 경쟁에선 이겼다. 시너보 교수는 이것이 '가위바위보' 게임과 같다고 봤다. 주황색이 '바위', 파란색이 '가위', 노란색이 '보'다.
주황색 수컷은 공격력으로 다른 개체를 이겼다. 가위바위보의 '바위'와도 같다. 반면 파란색 수컷은 다른 수컷을 철저하게 감시해서 차단했다. 노란색 수컷이 이 과정에서 밀려났다. 노란색 수컷에게도 그러나 비밀 병기는 있다. '변장'이다. 노란색 수컷은 수컷 특유의 위협 신호를 보내는 등의 과시 행동을 거의 하지 않고, 조용히 움직이면서 암컷인 척 위장한다. 이를 통해 주황색 수컷 구역에 슬쩍 들어가 짝짓기에 성공한다. '바위'를 '보'가 이기는 것이다.
아몬 콜 교수팀은 여기에 더해 고해상도 유전체 분석 기술을 동원해 새로운 사실을 알아냈다. 옆무늬도마뱀의 유전체를 분석해 보니 빛깔과 행동이 유전자에 따라 달랐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주황색 수컷과 파란색 수컷은 유전체 분석 결과 'SPR'이라는 단백질 수치가 달랐다. 수치가 높으면 주황색, 낮으면 파란색으로 변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 단백질이 빛깔뿐만 아니라 공격성까지 조절한다는 것이다.
반면 노란색 수컷은 유전적으로는 파란색 수컷과 거의 차이가 없었다. 연구팀은 "자기만의 영토를 차지하지 못한 옆무늬 도마뱀 수컷일수록 짝짓기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란색 위장 전략'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했다. 같은 유전적 배경을 가진 도마뱀도 사회적 조건이나 생리 상태에 따라 '노란색' 또는 '파란색'으로 다르게 발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를 두고 "생태계 유지의 비밀"이라고 했다. "한 종만 너무 강하면 결국 다른 종은 사라지게 마련이지만, 이 도마뱀들처럼 물고 물리는 관계가 형성되면 어느 한쪽도 멸종하지 않고 모두 유지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