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화살로 사냥하는 산족 사냥꾼. 최소 6만년 전부터 독화살로 사냥한 것으로 밝혀졌다./위키미디어

아프리카에서 6만년 전 독화살이 발견됐다. 지금까지는 8000년 전 독화살이 가장 오래된 것이었다. 독을 쓰려면 식물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오래전부터 식물이 식량뿐 아니라 독이나 약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됐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분석된다.

스웨덴 스톡홀름대의 스반 이삭손(Sven Isaksson) 교수 연구진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석기 시대 유적지에서 발굴된 6만 년 된 규암 화살촉 다섯 개에서 식물에서 나온 독성 물질을 발견했다"고 8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발표했다.

◇독화살로 대형 동물도 효율적으로 사냥

연구진은 1985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콰줄루나탈주의 움할라투자나 유적지에서 발견된 미세석기 10개를 조사했다. 지름이 1㎝ 정도인 날카로운 돌 조각들이었다. 표면에 묻은 화학물질을 분석했더니 그중 5개에서 부판드린이라는 독성 화합물의 흔적이 발견됐다.

부판드린은 부폰 디스티카(Boophone disticha)라는 현지 토종 식물에 있는 물질이다.이 식물은 보통 독구근(poison bulb)이라 불린다. 뿌리 구근에서 분비되는 유백색 분비물은 소량만으로도 쥐를 30분 만에 죽일 수 있으며, 인간에게도 메스꺼움과 혼수 상태를 유발할 수 있다. 대형 동물도 바로 죽이지 못해도 움직임을 느리게 해 사냥꾼들이 추적할 시간을 벌어줄 수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움흘라투자나 석기시대 유적지에서 발견된 미세석기 다섯 점의 앞뒤 사진. 현지 식물에서 나온 독성 물질의 흔적이 확인됐다. 아래 삽입 사진은 다른 10점의 유물이다./Science Advances,

연구진은 1770년대 남아프리카를 방문한 스웨덴 자연학자 칼 페터 툰베리가 수집한 화살도 검사했다. 그는 현지 사냥꾼들이 독화살을 쓴다는 기록을 남겼다. 검사 결과 이 화살촉에서도 같은 식물에서 나온 독성 물질이 검출됐다.

독화살을 썼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인류의 사냥 효율성이 높았음을 보여준다. 화살로 사냥감에 물리적 타격을 입혀 죽인다면 큰 동물은 잡기 어렵다. 하지만 독을 쓰면 사냥감에 역공을 당하는 위험 없이 큰 동물도 잡을 수 있다. 숲에 산다고 부시맨(bushman)으로 알려진 남아프리카 산(San)족은 지금도 6만년 전 화살촉에서 발견한 독성 물질을 사냥에 쓰고 있다. 작은 독화살로 스프링복 영양, 누와 얼룩말, 기린까지 사냥한다.

◇식물 활용이 다양했다는 증거이기도

최근까지 가장 오래됐다고 알려진 독화살은 약 8000년 전의 것이었다. 그러다 2020년 남아프리카 요하네스버그대의 말리즈 롬바드(Marlize Lombard) 교수는 5만~8만년 전 화살촉이 지난 150년간 산족이 사용한 독화살촉 디자인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렇다면 수만 년 전에도 지금처럼 독화살을 썼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연구진은 6만년 된 뼈 화살촉 하나가 점성 액체로 덮인 것을 발견했으나, 독의 존재를 확실히 입증하지는 못했다. 이번에 확실한 화학적 증거를 포착한 것이다. 이번 논문의 공동 저자인 롬바드 교수는 "단 하나의 유물에서만 발견됐다면 우연일 수 있다"며 "하지만 조사한 유물 10점 중 5점에서 발견된 것은 놀라운 일로, 6만년 전 독을 의도적으로 발랐음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아프리카 남부에 사는 식물인 부폰 디스티카(Boophone disticha). 구근 분비물에 독성 물질이 있다./위키미디어

과학자들은 이번 발견은 석기 자체보다 인류가 오래전부터 식물에 대한 지식을 활용했다는 증거를 찾았다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캐나다 빅토리아대의 에이프릴 노웰(April Nowell) 교수도 "표면적으로는 이 논문이 사냥 기술에 관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식물에 대한 지식에 관한 것"이라며 "지난 20여 년간 연구를 통해 초기 인류가 식량 외에 직물 염색과 치료 목적으로 식물을 활용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고 말했다.

이삭손 교수는 "인류가 식물을 식량과 도구로 오랫동안 사용했다는 건 잘 알지만, 이번 발견은 약물이나 의약품, 독과 같은 식물의 생화학적 특성을 활용했다는 점에서 또 다른 차원의 활용 사례"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수만 년 전 사람들이 부폰 구근을 먹고 병에 걸리거나 죽는 것을 보고 독을 발견했다고 추정했다. 부폰은 방부제, 항균제, 환각제 성분도 지녀 전통 의학에 사용되며, 현재도 과다 복용으로 인한 인간 사망 사례가 발생한다.

참고 자료

Science Advances(2026), DOI: https://doi.org/10.1126/sciadv.adz3281

Journal of Archaeological Science: Reports(2020), DOI: https://doi.org/10.1016/j.jasrep.2020.1024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