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를 가진 포유류 동물은 잠을 자면서 기억을 저장하고 뇌의 대사 노폐물을 제거한다. 컴퓨터 작동을 멈추고 업데이트하는 셈이다. 그런데 뇌가 없는 해파리도 하루 8시간 잠을 자는 것으로 나타났다. 잠을 제대로 못 자면 졸기도 했다.
리오르 애플바움(Lior Appelbaum) 이스라엘 바일란대 생명과학과 교수 연구진은 "수면의 핵심 기능이 신경계를 가진 최초의 생물인 해파리와 말미잘로부터 수억 년 전에 진화했다"고 7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에 밝혔다. 인간의 수면이 바다에서 먼저 나타났다는 의미다.
◇해파리는 밤에 자고, 말미잘은 낮잠파
해파리나 말미잘은 자포동물에 속한다. 먹이가 몸에 닿으면 자포라는 독침을 쓴다고 붙은 이름이다. 자포동물은 신경세포가 몸 전체에 비교적 단순한 네트워크로 배열된 형태로, 신경망이 최초로 진화한 동물로 분류된다.
애플바움 교수 연구진은 평생 거꾸로 사는 해파리인 카시오페아 안드로메다(Cassiopea andromeda)와 스타렛말미잘(Nematostella vectensis)을 수조에서 24시간 동안 카메라로 관찰했다. 해파리는 일반적으로 우산을 펼친 것처럼 반구형 몸 아래로 촉수들이 뻗은 모양인데, 카시오페아는 촉수를 위로 향한 채 떠다닌다.
연구진은 하루 중 절반은 빛을 비춰 낮과 밤을 구분했다. 해파리와 말미잘 모두 하루에 8시간씩 잤다. 하루의 3분의 1을 자는 것은 인간과 유사하다. 다만 해파리는 밤에 자지만, 말미잘은 주로 낮에 잠을 잤다. 해파리는 한두 시간씩 짧은 낮잠도 잤다.
해파리는 빛이 있는 시간에는 분당 37회 이상 우산 모양의 몸을 오므리고 펴는 동작을 했다. 빛이나 먹이에 신속히 반응해 깨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빛이 없는 밤에는 몸을 움직이는 빈도가 줄어들고 빛이나 먹이에 반응하는 데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잠에 든 것이다. 해파리가 자극에 반응하는 시간은 밤에 20초가 걸렸는데, 낮보다 두 배 이상 긴 시간이었다.
해파리가 잠을 잔다는 사실은 2017년 미국 캘리포니아 공대 연구진이 먼저 확인했다. 연구진은 "카시오페아 안드로메다가 밤에 잠을 잔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졌지만, 정확한 수면 패턴은 지금까지 불분명했다"며 "말미잘이 잠을 자는 것도 이번에 처음 확인했다"고 말했다.
◇인간처럼 잠자면서 DNA 손상 막아
잠을 설치면 다음 날 보충하는 것도 인간과 유사했다. 연구진은 해파리의 수면을 방해하기 위해 밤에 6시간 동안 물을 요동쳤다. 그러자 다음 날 해파리는 휴식을 충분히 취한 동료들보다 50% 더 오래 잤다. 수조에 멜라토닌을 주입하자 해파리와 말미잘이 평소 활동하던 시간대라도 잠이 들었다. 멜라토닌은 사람 뇌에서 밤에 분비돼 수면을 촉진하는 호르몬이다.
수면은 동물에게 아주 위험한 상태다. 잠을 자면 천적이 오는지 알지 못하고, 먹이나 짝을 찾고 새끼를 돌보는 데 쓸 수 있는 시간을 빼앗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해파리가 잠자는 목적은 인간과 같다고 설명했다. 뇌가 없어도 단순하나마 신경망을 갖추고 있어 보수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분석 결과 해파리가 깨어 있을 때 신경세포에서 DNA 손상이 축적되지만, 잠자면 이런 손상이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DNA 손상이 증가하면 보수 시간도 늘어났다. 자외선을 쏘아 해파리의 신경세포에서 DNA 손상을 증가시키자 더 오래 잠들었다. 말미잘에 DNA 손상을 일으키는 항암 치료제를 투여하자, 다음 날 다른 동료보다 30% 더 오래 잠잤다.
과학자들은 신경세포가 수억 년 전 초기 다세포동물에서 처음 출현했다고 본다. 이들은 오늘날 해파리나 말미잘과 유사한 동물로, 신경세포들이 서로 연결됐지만 뇌 같은 중앙 지휘소는 없었다. 그렇다면 신경세포 손상을 막는 수면의 핵심 기능도 수억 년 전에 진화했다고 볼 수 있다.
애플바움은 수면의 진화 과정을 연구하면 수면 부족과 신경 퇴행성 질환의 연관성을 밝히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깨어 있는 상태에서 뇌 일부가 일시적으로 비활성화되는 '국소 수면' 같은 현상도 설명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애플바움 교수는 "앞으로 신경계가 없는 해면동물과 뇌의 핵심 특징이 인간과 같은 제브라피시 같은 동물들을 연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참고 자료
Nature Communications(2026), DOI: https://doi.org/10.1038/s41467-025-67400-5
Current Biology(2017), DOI: https://doi.org/10.1038/10.1016/j.cub.2017.08.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