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블 우주망원경이 은하 중심에서 푸른 가스가 도망치듯 밀려나는 모습을 처음으로 포착했다. 미 항공우주국(NASA·나사)은 허블 우주망원경이 지구에서 약 6000만 광년(光年·1광년은 빛이 1년 가는 거리로 약 9조4600억㎞) 거리에 있는 NGC 4388 은하를 촬영한 사진을 지난 2일(현지 시각) 공개했다. 사진을 보면 중심부에서 푸른빛을 띤 가스 기둥이 뻗어 나와 하단 우측 모서리 쪽으로 이어진다.

허블 우주망원경은 나사와 유럽우주국(ESA)이 공동으로 개발하고 운영하는 최초의 우주망원경이다. 1990년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에 실려 발사돼 지구 상공 약 600㎞ 궤도를 돌며 대기의 방해 없이 우주를 관측하고 있다. 원래 설계 수명은 15년이었지만 지속적인 유지 보수를 통해 지금도 2021년 발사된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JWT)과 같이 현역으로 활동 중이다.

◇은하가 밀어낸 고에너지 가스 포착

허블 우주망원경 사진은 처녀자리 은하단에 속하는 NGC 4388 은하를 찍은 것이다. 처녀자리 은하단은 1000개 이상 은하가 모여 있는 곳으로, 우리은하에서 가장 가까운 대형 은하단이다.NGC 4388은 나선 은하이지만 이번 사진은 거의 측면에서 바라본 모습이어서 기다란 막대처럼 보인다.

은하의 원반에는 별이 만들어지는 성운에서 나오는 분홍빛과 뜨거운 별들의 군집에서 나오는 푸른빛이 담겨 있다. 두꺼운 먼지 구름은 은하 중심부의 강한 백색광을 차단하고 있다. 이번에 허블이 포착한 우측 하단의 푸른 가스 기둥은 허블이 2016년 찍은 사진에서는 볼 수 없던 모습이다. 나사 과학자들은 은하에서 유출된 푸른 가스 기둥이 은하 사이에 퍼져 있는 고에너지 물질에서 비롯됐다고 추정했다.

2016년 허블 우주망원경이 찍은 처녀자리 은하군의 NGC 4388 은하./NASA, ESA

광활한 우주는 별들이 생겨나 모여 있는 은하를 빼고 텅 비어 있는 듯 보이지만, 실제 이 공간은 '은하 간 물질(intracluster medium)'이라 불리는 뜨거운 가스 덩어리로 채워져 있다. NGC 4388이 처녀자리 은하단 안에서 이동할 때, 이 은하 간 물질을 관통한다. 이러면 은하 간 물질이 만든 압력 때문에 가스가 뒤로 흘러나온다.탄산가스로 가득 들어 있는 페트병을 눌러 콜라가 분출되는 것과 같다.

은하 간 물질은 고에너지 플라스마(plasma)이다. 플라스마는 초고온 상태에서 원자핵과 전자가 분리된 상태를 말한다. 은하 간 물질은 플라스마 상태인 수소와 헬륨으로 이뤄져 있다. 그렇다면 이 가스 구름을 플라스마 상태로 빛나게 하는 에너지는 어디서 왔을까. 과학자들은 은하 중심의 초거대 블랙홀에서 왔다고 추측한다.

◇블랙홀 모습 처음 보여준 처녀자리 은하

블랙홀은 사물을 끌어당기는 힘인 중력이 엄청나게 강해 모든 물질을 빨아들이는 천체다. 은하 중심에는 이런 블랙홀이 있다. 블랙홀에 빨려 들어간 물질들은 중력에 압착돼 원반 형태가 되며 빛에 가까운 속도로 회전한다. 이때 나오는 복사 에너지가 은하에 가장 가까운 가스를 전하를 띤 플라스마 상태로 만들 수 있다.

공교롭게도 처녀자리 은하단은 블랙홀의 실체를 인류에게 처음 보인 곳이기도 하다.사건 지평선 망원경(EHT) 국제 공동 연구진은 2019년 NGC 4486 은하 중심에 있는 M87 블랙홀의 사진을 공개했다. 앞서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묘사한 블랙홀은 물리학 이론을 근거로 컴퓨터로 합성한 모습이지 실제 영상은 아니었다.

사건 지평선 망원경(EHT) 국제공동연구진이 2019년 공개한 M87 블랙홀의 사진. 가운데 검은 구멍이 블랙홀이고, 주변의 밝은 빛은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며 회전하는 물질에서 나왔다. 아래쪽이 지구로 향하고 있어 더 밝게 관측된다./EHT

EHT 연구진은 2017년 4월 남극, 안데스산맥 등 전 세계 8곳에 있는 전파망원경으로 처녀자리 은하단의 한가운데에 있는 M87 블랙홀을 동시에 관측했다. M87 블랙홀은 질량이 태양의 65억 배에 이른다. 이처럼 엄청난 질량이 한곳에 밀집돼 중력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다.

블랙홀은 빛조차 흡수해 직접 사진을 찍을 수 없다. 과학자들은 대신 그림자를 찍었다. 사진에서 보이는 밝은 빛은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며 회전하는 물질에서 나왔고, 그 안 검은 공간이 블랙홀이 남긴 그림자이다. 당시 공개된 블랙홀 모습은 100년 전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으로 예측한 것과 완벽하게 들어맞았다.

특이하게 블랙홀 사진에서 아래쪽이 더 밝게 보인다.블랙홀에 근접한 물질은 빛에 가까운 속도로 회전하다가 끌려 들어간다. 1915년 발표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이렇게 회전하는 물질의 원반 중 지구를 향해 움직이는 부분은 지구에서 멀어지는 부분보다 더 밝게 보인다. 구급차가 가까이 올수록 사이렌 소리가 커지고 지나치면 소리가 작아지는 것과 같은 원리다.

참고 자료

NASA(2026), https://www.nasa.gov/image-article/hubble-glimpses-galactic-gas-making-a-getaway/

NASA(2016), https://science.nasa.gov/missions/hubble/hubble-catches-a-transformation-in-the-virgo-constellation/

The Astrophysical Journal Letters(2019), DOI: https://doi.org/10.3847/2041-8213/ab0ec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