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 상장 기업 에이비엘바이오는 지난달 12일 약물이 혈뇌장벽(血腦障壁)을 잘 통과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을 글로벌 시총 1위 제약사인 '일라이 릴리'에 25억6200만달러(약 3조6700억원)에 이전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이 회사는 지난 4월에도 글로벌 제약사 GSK(글락소스미스클라인)에 30억2000만달러(약 4조3300억원) 규모의 기술 이전 계약을 맺었다. 두 계약을 합하면 8조원에 달하는 바이오 기술 수출이다.

이를 포함해 올해 국내 제약 바이오 기업의 기술 수출 규모가 20조원을 넘어섰다. 역대 최대 규모다. 이른바 'K바이오' 기술 수출은 올해 17건으로, 2021년(34건)보다는 적지만, 1조원을 훌쩍 뛰어넘는 대형 계약이 늘면서 수출액은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K바이오, 올해 역대 최대 기술 수출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올해 1~12월 국내 제약 바이오 기업의 누적 기술 수출액이 145억3000만달러(약 20조8350억원·비공개 계약 제외)로 집계됐다고 지난 28일 밝혔다. 이로써 종전 최대 실적이었던 2021년 13조3720억원을 큰 폭으로 뛰어넘었다.

에이비엘바이오를 비롯해 대규모 기술 이전 계약이 실적을 견인했다. 지난 3월 알테오젠은 정맥 주사를 피하 주사로 바꾸는 기술을 아스트라제네카 자회사 메드이뮨에 최대 13억5000만달러(약 2조원)를 받고 이전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지난 5월엔 알지노믹스가 일라이 릴리에 최대 14억달러(약 2조원) 규모로 유전자 치료제 기술을 이전하는 계약을 맺었다.

이처럼 K바이오가 올해 역대 최고의 기술 수출 실적을 낸 데는 세계적 기술력과 함께 외부적 상황도 작용했다. 글로벌 제약사들의 오리지널 약물 상당수가 특허 만료를 앞두자 새로운 신약 후보 물질(파이프라인) 등을 찾아 나서면서 한국 바이오 기업의 기술을 주목한 것이다.

◇항체약물접합체(ADC) 등 분야 다양화

바이오 기술 수출 분야도 항체 약물 접합체(ADC), 퇴행성 뇌 질환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ADC는 암세포만 정확히 겨냥해 항암제를 전달하는 치료 기술을 뜻한다. 에임드바이오는 지난 10월 베링거인겔하임과 ADC 신약 물질 기술 이전 계약을 최대 9억9100만달러(약 1조4200억원) 규모로 체결했다. 이에 따라 베링거인겔하임은 에임드바이오가 개발한 신규 종양 표적 기반 ADC에 대한 개발·상업화 권리를 확보했다.

알츠하이머병 치료를 위한 기술 이전도 잇따르고 있다. 퇴행성 뇌 질환 치료제 개발 기업 아델은 지난 16일 알츠하이머병 치료 물질에 대한 독점적 개발·상업화 권리를 최대 10억4000만달러(약 1조5000억원) 규모로 프랑스 제약사 사노피에 이전하는 계약을 맺었다. 앞서 지난 6월 아리바이오는 알츠하이머병 치료제에 관한 6억달러(약 8600억원) 규모의 기술 수출 계약을 아랍에미리트 제약사 아르세라와 체결했다. 올릭스는 지난 2월 일라이 릴리와 대사 이상 지방간염(MASH) 및 심혈관·대사 질환 치료제 기술을 6억3000만달러(약 9000억원)에 이전하는 계약을 맺었다.

이처럼 국내 제약 바이오 기업의 기술 이전 성과가 눈에 띄게 늘어났지만, 국내 독자 기술로 개발한 글로벌 블록버스터(연간 매출액 10억달러 이상의 바이오 의약품)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신약 후보 물질 발굴에 머물지 않고 임상 시험을 거쳐 상용화까지 끌고 갈 역량은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국내 제약 바이오 기업들이 독자적으로 블록버스터를 출시할 수 있도록 연구·개발과 투자 체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