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제약회사 노보 노디스크의 비만 치료제가 먹는 알약 형태로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으면서, '먹는 비만약'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다. 그간 주삿바늘에 대한 공포와 보관의 번거로움 때문에 망설였던 환자에게 혁신적인 대안이 될 전망이다. 비만 치료제 시장이 먹는 알약의 등장으로 또 한 번 도약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노보 노디스크를 필두로 일라이 릴리, 화이자 등 글로벌 제약사들은 비만 치료제 시장 패권을 잡기 위해 더 효과적이고 몸에 잘 흡수되는 먹는 알약 기술 개발을 서두르고 있다. '주사제 2.0'을 위한 기술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먹기 편한 알약과 경쟁하려면 그만큼 효과가 더 뛰어나고 효능이 오래 지속되는 신약 주사제를 내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비만 치료제 시장이 또 한 번의 대격변을 맞게 된 것이다.
◇'먹는 비만약' 시대, 최후 승자는
노보 노디스크가 이번 FDA 승인을 거쳐 조만간 시장에 내놓는 '먹는 위고비'는 하루 한 알씩 먹는 형태다. 노보 노디스크는 경쟁사인 미국의 일라이 릴리보다 먼저 '세계 최초의 먹는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 계열의 비만약'이라는 타이틀을 따내는 데 성공했다.
'먹는 위고비'가 그러나 계속 비만 치료제 시장의 패권을 지킬 수 있을지 아직은 알 수 없다. 일단 감량률 면에선 먹는 위고비가 일라이 릴리가 개발 중인 먹는 비만 치료제 '오포글리프론'을 앞선다. 먹는 위고비는 64주 차에 체중을 16.6% 줄이는 데 성공했다. 경쟁사인 오포글리프론은 72주 차에 12.4%다.
반면 편의성은 일라이 릴리의 오포글리프론이 앞선다. 알약 위고비의 복용 기준이 조금은 까다롭기 때문이다. 먹는 위고비 성분인 펩타이드가 몸속에 들어가면 효소들이 빠르게 분해한다. 이를 막기 위해 특정 성분(SNAC)으로 약물을 감싸는데 이 성분이 거품을 내면서 녹아 흡수되는 데 30분 가량은 걸린다. 따라서 알약 위고비를 복용할 땐 반드시 공복에 120mL 이하의 물(종이컵의 3분의 2)과 함께 먹어야 한다. 이후 최소 30분은 어떤 음료나 음식도 먹거나 마시면 안 된다. 다른 약도 같이 먹을 수 없다. 약의 흡수 효과를 높이기 위한 과정이라는 설명이다.
반면 일라이 릴리가 개발 중인 먹는 비만약 '오르포글리프론'은 비(非)펩타이드·저분자 GLP-1 수용체 작용제로 만들어졌다. 하루 중 아무 때나 어떤 음식이나 음료와 같이 복용해도 상관없다. 저분자 형태 알약은 펩타이드 약물보다 제조가 쉽고 대량 생산에도 유리해 수요가 크게 늘어날 때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시장 대응력에 더 유리할 수 있다는 얘기다.
미국 바이오 기업인 스트럭처 테라퓨틱스도 현재 순수 저분자 GLP-1 작용체를 개발하고 있다. 저분자 수용체로 만들어져 먹는 위고비보다 복용하기 편하고 대량 생산도 쉽다. 최근까지 임상에선 11~15% 체중 감량 효과를 보였다.
노보 노디스크의 '리벨서스'는 매일 먹어야 하지만, 환자들은 일주일에 한 번 먹는 것을 더 선호한다. 약물 반감기를 늘려 일주일에 한 번만 먹어도 되는 알약을 개발하는 기업도 늘어나고 있다. 스위스 제약사 로슈는 미국의 비상장 기업인 카모트 테라퓨틱스를 인수해 확보한 후보 물질로 일주일에 한 번만 먹어도 되는 먹는 비만약을 연구하고 있다.
미국의 바이오 기업 바이킹 테라퓨틱스도 일주일에 한 번만 먹어도 되는 비만 치료제를 개발한다. 일라이릴리의 주사 치료제 '마운자로'처럼 GLP-1과 GIP가 동시에 작용하는 이중 작용제로 만들고 있다. 먹는 위고비보다 더 높은 체중 감량 효과를 얻기 위한 전략이다. 초기 임상에서 4주 만에 체중 5% 감량 효과를 보여 시장의 기대를 모았다.
화이자는 바이오 기업 '멧세라'를 인수하면서 국내 기업 디앤디파마텍의 경구용 기술 '오랄링크'를 이전받았다. 이를 통해 먹는 위고비보다 흡수율이 10배가량 높은 차세대 먹는 비만약을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효과가 우수한 주사제 개발도 계속
효과가 우수한 비만 치료 주사제를 개발하려는 기업도 많다. 먹는 알약과 경쟁하기 위해 더욱 효과가 강력하고 오래가는 형태로 만들기 위한 기술 경쟁이 치열하다. 현재 미국 제약사 암젠은 아예 1년에 한두 번만 맞아도 효과가 지속되는 주사제 형태의 비만 치료제를 연구하고 있다.
약물을 '마이크로스피어'(미립구)로 감싸 서서히 방출하게 해주는 기술 확보 경쟁도 계속되고 있다. 국내에선 펩트론, 지투지바이오, 인벤티지랩 등이 이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펩트론은 현재 일라이릴리와 함께 해당 기술을 검증하고 있다. 인벤티지랩과 지투지바이오도 각각 베링거인겔하임과 펩타이드 후보 물질에 대한 장기 지속형 주사제형 공동 연구 계약을 체결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