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자와 난자./미국임신협회

국제 연구진이 자궁 안쪽을 덮는 자궁내막을 실험실 접시 위에서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 그동안 직접 관찰이 거의 불가능했던 임신 초기, 특히 착상 직후의 미세한 변화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유산이나 임신 합병증이 왜 생기는지, 또 체외수정(IVF) 성공률을 어떻게 높일 수 있을지에 대한 단서가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영국 케임브리지의 배브라함 연구소 연구진은 여성의 자궁내막을 배양접시에서 재현한 뒤, 연구용 초기 배아를 올려 착상이 일어나는 과정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셀'에 24일 게재됐다.

임신은 수정란이 며칠 동안 자라 배아가 된 뒤, 보통 수정 후 약 1주일쯤 자궁내막에 붙고, 더 깊이 파고들어 자리 잡는 착상 과정을 거친다. 문제는 이 과정이 자궁 안에서 매우 초기에 벌어져 직접 관찰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 지식 상당수는 50여년 전 드물게 확보된 자궁 적출 사례를 통해 얻은 '스냅샷'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연구진은 건강한 여성의 자궁 조직에서 두 종류의 세포를 분리했다. 자궁내막의 뼈대 역할을 하는 기질세포와 표면을 덮는 상피세포다. 기질세포는 하이드로젤이라 불리는 젤 형태 재료에 넣어 3차원 구조를 만들고, 그 위에 상피세포를 올려 자궁내막 모형을 구축했다. 하이드로젤은 수분을 많이 머금는 젤로, 몸속 조직처럼 세포가 자리 잡고 신호를 주고받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준다.

이렇게 만든 자궁내막 모형에 연구용으로 기증받은 초기 배아를 배양하자, 배아는 자연 임신처럼 표면에 달라붙고 파고드는 착상 과정을 보였다. 이 과정에서 임신 테스트에서 양성을 나타내는 호르몬인 사람 융모성 생식샘자극호르몬(hCG) 분비도 증가했다. 배아가 착상에 성공하면서 임신 관련 물질들을 실제처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특히 연구진은 착상 과정에서 오가는 화학 신호에 주목했다. 임신은 배아가 자궁내막에 왔다는 것을 알리고, 자궁내막이 자리를 잡아도 된다고 반응하는 식의 쌍방 신호 교환이 있어야 안정적으로 진행된다. 연구진은 착상 부위를 확대 분석해 배아와 자궁내막 사이의 분자 신호 교환을 해독했다.

이를 바탕으로 향후 착상 실패의 원인이 특정 신호의 부족, 과잉이나 세포 반응의 타이밍 문제로 밝혀진다면, IVF에서 배아의 질만 따지는 방식에서 나아가 자궁 내막 환경을 조절하는 치료가 가능해질 수 있다. 실제 연구진이 특정 신호를 화학물질로 차단하자, 태반으로 자랄 조직에 심각한 결함이 생겼다. 이 단계의 오류는 임신 합병증과도 연결될 수 있다.

연구진은 "전체 배아의 약 절반이 착상에 실패하지만, 그 이유는 아직 알지 못한다"며 "추가 실험을 통해 착상 후 태반이 만들어질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살펴볼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성과가 공개된 같은 날, 같은 학술지에 착상률을 높이는 방법에 초점을 맞춘 연구도 함께 나왔다. 중국 연구진은 독자적인 자궁내막 모형을 만들고, 좋은 배아를 이식해도 임신이 잘 성립되지 않는 반복 착상 실패의 경우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약물 후보를 찾아냈다고 보고했다.

존 애플린(John Aplin) 맨체스터대 교수는 "보조생식 기술이 40년 넘게 발전했지만 착상률은 여전히 낮다"며 "이번 접근이 착상 효율을 높이는 치료 탐색에 중요한 도구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참고 자료

Cell(2025), DOI: https://doi.org/10.1016/j.cell.2025.10.027

Cell(2025), DOI: https://doi.org/10.1016/j.cell.2025.10.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