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방 식단./pixabay

고지방 식단이나 과음 같은 생활습관은 간에 지방이 쌓이고 염증이 생기는 지방간을 만들고, 시간이 지나면 섬유화와 간경변을 거쳐 간암으로 이어질 수 있다. 최근 국제 연구진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세포 수준에서 추적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 연구진은 지방이 많은 환경이 간세포의 성격 자체를 바꿔 암에 취약하게 만든다는 연구 결과를 23일 발표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셀(Cell)'에 게재됐다.

간은 흔히 우리 몸의 화학 공장으로 불린다. 해독을 담당하고 영양소를 처리하며, 혈액 응고나 물질 운반에 필요한 단백질을 만들어 혈액으로 내보낸다. 이 일을 주로 맡는 핵심 세포가 간세포다.

연구진은 생쥐에게 고지방 식단을 먹인 뒤, 질환이 진행되는 여러 시점에서 간세포들을 분석했다. 분석 결과, 초기 단계에서는 간세포가 스트레스 환경을 버티기 위해 생존 모드를 먼저 켰다. 손상된 세포가 스스로 정리되도록 돕는 유전자들이 활성화되고, 세포 증식에 유리한 신호가 강화됐다. 반면 간세포가 원래 하던 본업과 관련된 유전자들은 점차 약해졌다. 영양소를 분해·합성하고 독성 물질을 처리하는 데 필요한 대사 효소와 분비 단백질처럼 간세포 기능에 필수적인 유전자의 발현이 억제됐다.

콘스탄틴 추아나스(Constantine Tzouanas) MIT 연구원은 "마치 개별 세포가 스트레스 환경에서 살아남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을 우선시하는 대신, 조직 전체가 해야 할 일을 희생시키는 일종의 절충안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이 변화는 결국 간세포의 정체성 자체를 흔드는 방향으로 이어졌다. 연구진은 고지방 환경에 반복 노출된 간세포가 성숙한 상태에서 발달 단계의 미성숙한 상태로 되돌아가는 듯했다고 표현했다. 여기서 미성숙하다는 뜻은 세포가 어린 세포로 바뀐다는 의미라기보다, 발달 과정에서 주로 켜졌던 유전자들이 다시 켜지고 간세포가 갖춰야 할 기능 관련 유전자는 약해졌다는 의미에 가깝다.

문제는 이런 미성숙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이후 돌연변이가 생겼을 때 암으로 치닫기가 쉬워질 수 있다는 점이다. 암은 보통 돌연변이가 쌓이면서 생기는데, 같은 돌연변이가 생겨도 세포가 어떤 준비 상태에 있느냐에 따라 암으로 발전하는 속도와 가능성이 달라질 수 있다. 이미 생존·증식 프로그램이 켜져 있고 성숙한 정체성이 느슨해진 세포라면 이후 잘못된 변이가 더해졌을 때 암 성질을 띠기가 더 쉽다는 해석이다. 실제로 연구 기간 말에는 고지방 식단을 지속한 생쥐 대부분이 간암을 겪었다.

연구 책임자인 알렉스 샬렉(Alex K. Shalek) MIT 교수는 "세포가 고지방 식단과 같은 스트레스 요인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생존에 도움이 되는 행동을 하게 되지만, 종양 발생에 대한 감수성이 증가할 위험이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동시에 이런 간세포의 회귀를 조절하는 유전자 스위치(전사인자) 후보도 찾았다. SOX4처럼 원래 태아 발달기나 일부 조직에서 주로 활성화되는 전사인자가 간에서는 비상적으로 관여할 가능성이 제시됐다. 에너지 대사와 관련된 HMGCS2 같은 효소 역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 확인됐다. 이 유전자들은 고위험군에서 간이 암으로 넘어가기 전에 개입할 치료 표적 후보가 될 수 있다.

동물실험 결과가 사람에게도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연구진은 간 질환 단계가 서로 다른 환자들의 간 조직 데이터를 분석했다. 그 결과 시간이 지날수록 정상 간 기능에 필요한 유전자 발현은 줄고, 미성숙한 상태와 관련된 유전자 발현은 늘어나는 흐름이 사람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 패턴을 분석해 환자의 예후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추아나스 연구원은 "고지방 식단으로 활성화되는 유전자의 발현이 높은 환자들은 종양 발생 후 생존 기간이 더 짧았다"며 "간의 기능을 지원하는 유전자의 발현이 낮은 환자들도 생존 기간이 짧았다"고 말했다.

향후 연구진은 고지방 식단으로 유도된 변화가 정상 식단으로 전환하면 되돌아갈 수 있는지,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 계열 체중 감량 약물 등으로 대사 스트레스를 줄였을 때 세포 프로그램이 회복되는지 확인할 계획이다.

샬렉 교수는 "우리는 새로운 분자 표적들을 모두 확보했고, 생물학적 메커니즘에 있는 원리를 더 잘 이해하게 됐다"며 "이를 바탕으로 환자들의 치료 결과를 개선할 수 있는 새로운 접근 방식을 제시해 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참고 자료

Cell(2025), DOI: https://doi.org/10.1016/j.cell.2025.1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