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속을 헤엄치는 혹등고래 어미와 새끼. 혹등고래는 몸길이가 15m이고 몸무게가 40t에 이른다. 생체 시료를 채집하려고 섣불리 접근하기 어렵다. 드론은 고래가 호흡하며 내뿜는 물줄기에서 분비물을 채집해 건강 상태를 검사할 수 있다./세계자연기금

고래도 코에 있는 분비물을 분석해 건강 상태를 알아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나왔다. 코나 입을 면봉으로 문지르거나 침을 시험관에 뱉어 코로나 검사를 하는 방식과 비슷하다. 그렇다고 몸길이가 10~20m에 이르는 대형 고래를 병원이나 연구실로 데려와 검사할 수는 없다. 배로 접근하거나 잠수해서 생체 시료를 채취하기도 어렵다.

과학자들은 고래 진단용 공중 검사법을 개발했다. 고래가 수면 위로 올라와 숨을 쉴 때 내뿜는 물을 드론으로 채집해 분석하는 방식이다. 이 방법으로 북극권 고래에 퍼진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찾아냈고, 고래 개체 수 감소를 부른 장내 미생물 불균형도 알아냈다. 고래 보호에 육지의 실험실과 해양 조사선에 이어 드론까지 육해공이 총출동한 셈이다.

◇북극권 고래에 치명적 바이러스 퍼져

노르웨이 노르대의 코트니 워프(Courtney Waugh) 교수 연구진은 "노르웨이 북부 해역에서 혹등고래와 향고래, 참고래가 숨 쉬면서 내뿜은 분출물을 드론으로 채취하는 데 성공했다"고 지난 18일(현지 시각) 국제 학술지 'BMC 수의학 연구'에 발표했다.

고래의 숨구멍, 즉 코는 머리 꼭대기에 있다. 고래가 수면 위로 올라와 숨을 쉬면 폐에 있던 따뜻한 공기가 차가운 대기와 만나 수증기가 되면서 숨구멍에서 물줄기가 V자형으로 분출된다. 겨울에 유리창에 숨을 쉬면 수증기가 맺히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이때 숨구멍에 고여 있던 물, 점액질, 세포 등이 함께 뿜어져 나온다.

노르웨이 노르대 연구진이 무균 배양 접시를 장착한 드론을 띄우고 있다. 드론은 고래가 수면에서 호흡하면서 내뿜는 물줄기 속으로 비행하면서 분비물을 채집한다.노르웨이 노르대

노르웨이와 영국, 아일랜드, 아이슬란드 과학자들이 참여한 국제 공동 연구진은 2016년부터 2025년까지 노르웨이 북부와 아이슬란드, 아프리카 서해안의 섬나라인 카보베르데를 포함한 북동 대서양 전역에서 무균 배양 접시를 장착한 드론을 띄워 혹등고래, 향고래, 참고래, 긴지느러미들쇠고래의 숨구멍 분출물을 채집했다.

연구진은 고래의 콧속 분비물을 분석해 북극권 고래들에 치명적인 '고래 모르빌리바이러스(Cetacean morbillivirus)'가 유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확인했다. 이 바이러스는 고래와 돌고래, 쇠돌고래를 감염시키는 고병원성 바이러스로 호흡기, 신경계, 면역계를 손상한다. 연구진은 노르웨이 북부 혹등고래 무리와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던 향고래, 해안에 밀려와 죽은 긴지느러미들쇠고래에서 고래 모르빌리바이러스를 발견했다.

고래 모르빌리바이러스는 1987년 집단 폐사한 큰돌고래에서 처음 발견된 이래 여러 고래류 떼죽음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카보베르데 전역의 혹등고래에서는 헤르페스바이러스도 발견됐으나, 그동안 해안에 밀려온 고래 사체에서 나온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나 브루셀라균은 검출되지 않았다.

드론 공중 검사는 고래 연구에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논문 공동 저자인 킹스 칼리지 런던(KCL) 지리학과의 테리 도슨(Terry Dawson) 교수는 "드론의 분출물 채집은 고래 연구의 판도를 바꾸는 게임 체인저"라며 "살아 있는 고래에게 스트레스나 해를 주지 않고 병원체를 추적해 급변하는 북극 생태계의 감염병을 연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논문 제1 저자인 노르드대의 헬레나 코스타(Helena Costa) 박사과정 연구원은 "앞으로 드론을 이용해 새로운 스트레스 요인이 고래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장기간에 걸쳐 감시하겠다"고 말했다.

드론이 북대서양긴수염고래가 수면에서 호흡하면서 내뿜는 물줄기 위로 비행하고 있다. 드론이 호흡 분비물을 채집하면 고래에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고 건강 상태를 검사할 수 있다./미 우즈홀 해양연구소

◇날씬이 장내 미생물, 고래 출산에 지장

미국 과학자들도 북미 대륙 동부 해역에 사는 혹등고래의 건강 상태를 드론으로 검사하는 데 성공했다. 미국 우즈홀 해양연구소의 에이미 애프릴(Amy Apprill) 박사 연구진은 "드론으로 채집한 분비물을 분석해 북대서양긴수염고래의 건강과 장내 미생물 간의 연관성을 처음으로 입증했다"고 지난달 국제 학술지 'ISME(국제 미생물 생태학회) 저널'에 발표했다.

우즈홀 해양연구소 과학자들은 2016년부터 2024년까지 무균 배양 접시를 장착한 드론을 고래가 호흡하면서 내뿜는 물줄기 위로 띄웠다. 이 방식으로 매사추세츠주 케이프코드 만에 사는 북대서양긴수염고래 85마리에서 분비물 시료를 103개 채취했다.

연구진은 고래 분비물을 분석해 장내 미생물의 유형과 고래의 체형 사이에 연관성이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사람의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공생 미생물) 중에 비만이나 마른 체형을 만드는 종류가 있듯 고래 체형도 장내 미생물에 영향을 받는다는 말이다.

사람은 날씬이 장내 미생물을 원하지만 고래는 정반대다. 앞서 연구에 따르면 암컷 고래는 에너지를 내는 체지방이 충분해야 캐나다 노바스코샤와 미국 뉴잉글랜드에서 플로리다와 조지아 연안까지 출산지로 이동할 수 있다. 저체중 암컷은 출산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다. 이번 결과는 장내 미생물이 고래의 출산도 좌우한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연구진은 "북대서양긴수염고래는 몸무게가 70t에 이르고 몸길이는 스쿨버스보다 크기 때문에 동물병원에 데려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개체 수가 400마리 미만으로 급감한 멸종 위기종인 북대서양긴수염고래를 이제 드론으로 효과적으로 감시하고 보호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고 밝혔다.

드론이 북대서양긴수염고래 위로 날아가면서 호흡할 때 내뿜는 물줄기를 채집한다. 이 방식으로 고래에게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고 분비물을 채취해 건강 상태를 알아볼 수 있다./미 우즈홀 해양연구소

◇영상 촬영 이어 생체 시료 채집도 가능

드론은 이전부터 야생동물 연구에 활용됐다. 드론은 인간이 접근하기 힘든 바다의 고래나 팽귄, 물개 무리 추적을 도맡고 있다. 미 해양대기청(NOAA)은 회전날개형 드론이 찍은 영상으로 고래의 건강 상태를 추적하고 있다. 2019년에는 수년간 범고래 무리를 30m 상공의 드론이 촬영한 영상을 비교해 각 개체의 건강 상태가 나빠졌음을 확인했다.

지상에서도 드론이 활약하고 있다. 세계자연기금( WWF)은 인도와 네팔에서 호랑이와 코끼리, 코뿔소 밀렵을 감시할 고정날개형 드론을 운영하고 있다. 구글도 이 프로젝트를 후원하고 있다. 영국의 동물보호단체는 귀족들의 여우 사냥이 법의 한계를 벗어나는지 헬기형 드론을 띄워 감시하기도 했다.

드론은 카메라에 이어 생체 시료 채집 장비까지 갖춰 야생동물의 현장 검진에 도전하고 있다.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대 연구진은 지난 2023년 드론으로 나무 14종과 육상동물 21종의 eDNA 시료를 확보했다고 발표했다. eDNA는 물과 흙, 공기 등 다양한 환경에서 추출한 생물 DNA 조각으로, 환경 DNA라고 부른다. eDNA를 분석하면 생물 표본 없이도 특정 서식지에 어떤 생물이 사는지 알아낼 수 있다. 이런 장점 덕분에 생물 다양성 연구에 많이 활용된다.

스위스 연구진은 특수 케이지와 힘 센서를 이용해 나무에 착륙할 수 있도록 만든 드론을 개발했다. 케이지 가장 바깥 부분에는 테이프나 가습 거즈와 같은 접착성 물질로 만들어진 eDNA 수집기가 있다. 드론이 나무에 앉으면 접착성 물질이 착륙 면에 닿으면서 DNA가 붙는다.

참고 자료

BMC Veterinary Research(2025), DOI: https://doi.org/10.1186/s12917-025-05152-6

The ISME Journal(2025), DOI: https://doi.org/10.1093/ismejo/wraf231

Science Robotics(2023), DOI: https://doi.org/10.1126/scirobotics.add57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