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확산이 2025년 과학계의 가장 중요한 성과로 꼽혔다. 학술지 사이언스는 '재생에너지 급가속'을 올해 최고의 과학·기술 혁신(Breakthrough of the Year)으로 선정했다고 19일 전했다. 산업혁명 이후 인류가 석탄·석유·가스 같은 화석연료에 의존해 온 흐름이, 올해 들어 태양에서 들어오는 에너지로 뚜렷하게 옮겨가기 시작했다는 평가다.
화석연료는 수억년 전 식물이 저장해 둔 태양에너지가 지층 속에 갇힌 결과물이다. 반면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는 말 그대로 현재의 태양 에너지와 태양이 만든 바람을 전기로 바꿔 쓰는 방식이다.
◇재생에너지, 전력 생산에서 석탄 넘어서
기사에 따르면 재생에너지는 올해 전 세계 전력 생산에서 석탄을 넘어섰으며, 에너지 싱크탱크 '엠버(Ember)' 분석으로는 태양광·풍력이 1~6월 전 세계 전력 사용 증가분을 사실상 모두 충당할 만큼 빠르게 늘었다. 전 세계가 전기를 더 쓰게 됐는데도 추가 수요를 석탄·가스가 아니라 태양광·풍력이 떠받쳤다는 의미다.
아프리카·남아시아에서는 지붕형 태양광이 전등·휴대폰·선풍기 같은 생활 전력을 싸게 해결해 준다는 인식이 확산되며 패널 수입이 급증했고, 파키스탄은 2022~2024년 중국산 패널 수입이 5배 늘었다는 사례도 소개됐다.
가속의 엔진은 중국의 '규모'다. 중국은 세계 태양전지의 80%, 풍력 터빈의 70%, 리튬 배터리의 70%를 생산하며 가격을 끌어내렸다. 생산 확대부터 가격 하락, 수요 폭증, 추가 증설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만들어지면서 재생에너지 기술은 중국 경제의 10% 이상을 차지하는 산업으로 성장했다. 풍력·태양광은 많은 지역에서 가장 싼 전력원이 됐다.
사이언스는 중국 내 사막과 티베트 고원에 태양광이 깔리고, 300m급 풍력 터빈이 해안과 산지를 메우는 등 '석탄의 풍경'이 바뀌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의 태양광·풍력 설비 용량이 '미국 전체를 돌릴 만한 수준'이라는 표현도 등장했다. 앞서 중국은 국제 무대에서 풍력·태양광을 두 배로 늘리는 방식으로 향후 10년 내 탄소 배출을 최대 10% 줄이겠다는 목표를 밝힌 바 있다.
다만 전 세계 탄소 배출은 여전히 증가하고,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보다 섭씨 1.5도 이내로 억제한다는 파리협정의 목표는 사실상 멀어졌다는 경고도 함께 나온다. 재생에너지는 햇빛·바람의 변동성이 있어 대규모 저장(배터리)과 송전망이 필수이고, 항공·철강 같은 분야는 단기간에 전기화가 어렵다. 중국의 석탄 증설, 미국의 정책 역풍과 중국산 설비에 대한 무역 장벽도 변수로 남는다. 발전기가 늘어도 저장고가 작고 송전망이 부족하면 전환 속도는 둔해질 수밖에 없다.
향후에는 실리콘 태양전지에 페로브스카이트를 겹친 탠덤 구조, 부유식 해상 풍력, 리튬을 대체할 나트륨·플로우 배터리 같은 기술이 전환 속도를 더 끌어올릴 전망이다. 탠덤 태양전지는 다른 소재를 겹쳐 각각 다른 파장의 빛을 흡수해 발전 효율을 올리는 방식을 말한다.
사이언스는 "재생에너지 확산의 동력이 기후 의무에서 '비용 절감과 에너지 안보'로 바뀐 만큼, 올해의 질주는 시작에 가깝다"고 내다봤다.
◇유전자교정·신약·우주 관측… 사이언스가 꼽은 '올해의 성과'
사이언스는 '올해의 혁신' 외에도 분야별로 주목할 연구 성과들을 함께 소개했다. 공통점은 단순한 '발명'이 아니라, 이미 있던 기술을 더 정교하게 다듬거나, 더 큰 규모로 굴리거나, 더 현실적인 해법으로 연결한 사례들이라는 점이다.
초희귀 질환 치료에서는 개인 맞춤형 유전자 교정 치료가 역사적 사례로 다뤄졌다. 생명을 위협하는 대사 질환을 가진 영아에게, 특정 유전자 오타 하나를 겨냥한 '염기 교정'을 환자 맞춤형으로 설계해 투여한 것이다. 염기 교정은 유전정보가 담긴 디옥시리보핵산(DNA)을 크게 자르는 방식이 아니라, 문서에서 철자 하나를 바로잡듯 DNA를 구성하는 염기 하나만 바꾸는 방식이다. 치료를 받은 아기 KJ 멀둔은 상태가 호전됐다고 전해졌다.
'내성'이 무기가 된 세균과의 싸움에도 새 카드가 등장했다. 항생제 내성 위기가 커진 임질 분야에서는 새 치료제 2종 블루제파(Blujepa·성분명 게포티다신)와 누졸벤스(Nuzolvence·성분명 졸리플로다신)가 등장했다. 임질은 전 세계에서 매년 8000만명 이상이 감염되는 것으로 알려진 성매개 감염병으로, 원인균이 거의 모든 항생제에 내성을 키워왔다. 사이언스는 올해 대규모 임상시험을 거쳐 미국에서 승인된 두 신약이 기존 치료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수십년 만의 새 무기가 될 수 있다고 전했다. 두 약 모두 알약 형태라는 점도 장점으로 언급됐다.
암 연구에서는 신경세포가 암세포에 미토콘드리아를 전달해 전이를 돕는 메커니즘이 보고됐다는 내용이 소개됐다. 미토콘드리아는 세포에서 에너지 생산소 역할을 하는 소기관이다. 암세포의 에너지 수요를 주변 신경이 지원해 주는 셈이라, 이 전달을 차단하면 전이를 늦추는 전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시된다.
우주 관측 분야에서는 칠레에 건설된 베라 C. 루빈 천문대가 새로운 유형의 천문학을 여는 장치로 꼽혔다. 이 망원경은 특정 천체를 확대해 보는 대신 하늘 전체를 반복 촬영해, 움직이거나 밝기가 변하는 사건을 대량으로 잡아내는 방식이다. 45개 보름달 면적에 해당하는 넓은 시야, 32억 화소급 카메라, 촬영 후 1분 내 알림 전송 등 하늘의 CCTV와 같은 역할을 한다.
인류 진화 연구에서는 중국 하얼빈에서 나온 14만6000년 된 '드래곤맨' 두개골이 데니소바인으로 확인된 성과가 소개됐다. 뼈가 아니라 치아에 붙은 치석에서 아주 적은 양의 DNA를 뽑아낸 것이 결정적이었다는 설명이 붙었다. 앞으로 다른 화석들에서 데니소바인을 가려낼 단서가 늘어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인공지능(AI)은 이제 논문 요약을 넘어 '실험의 후보'를 제안하는 단계로 들어섰다. 대규모언어모델(LLM)이 과학 연구에 들어오기 시작해 수학 난제 해결, 화학 실험 조건 최적화, 생물학에서 기존 약물 중 치료 후보를 추리는 시도 등 '연구 속도를 올리는 도구'로 기능했다. 다만 AI가 가설 설정과 검증, 동료 평가까지 스스로 수행할 수 있느냐를 두고 회의도 남아 있으며, 과학계 내부 논쟁은 계속될 전망이다.
입자물리학에서는 뮤온의 자기 성질이 지배적인 이론인 '표준모형'과 다르다는 새 물리학의 힌트가 올해 들어 약해졌다는 결과가 소개됐다. 이론가들이 '격자 게이지 이론'이라는 계산 기법과 슈퍼컴퓨터를 활용해 뮤온 값을 처음부터 정밀하게 계산해 낸 것이다. 계산 과학의 발전으로 수십 년 된 입자의 미스터리가 풀렸다.
장기 부족이라는 현실 문제를 향한 우회로도 조금 더 현실에 가까워졌다. 장기이식 분야에서는 유전자 편집 돼지의 장기를 사람에게 이식하는 이종(異種) 장기이식이 생존 기록을 경신하며 임상 단계로 다가섰다는 소식이 실렸다. 대표적인 사례는 69개 유전자가 변경된 돼지 신장은 뉴햄프셔의 한 남성에게서 거의 9개월 동안 기능했다. 다만 사이언스는 장기 생존 기간을 더 늘리기 위한 추가 유전자 조정, 면역 거부 반응을 억제할 약물·전략 개선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고 덧붙였다.
기후와 식량 분야에서는 밤의 더위가 벼 수확과 품질을 떨어뜨리는 문제에 대응해, 야간 고온에서도 품질·수확을 유지하는 벼의 특정 유전자가 확인됐다는 연구가 소개됐다. 향후 품종 개량 또는 유전자 편집으로 상업 품종에 적용되면, 더워지는 밤이 일상이 되는 기후에서 쌀 생산 안정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과학을 흔든 올해의 후퇴 '트럼프발 지원 축소'
사이언스는 올해의 성과와 함께 '올해의 후퇴(breakdowns)' 성격의 이슈들도 비중 있게 다뤘다.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국립보건원(NIH), 국립과학재단(NSF) 등 연구 기관과 대학을 둘러싼 지원 체계가 급격히 흔들리며, 각종 연구 과제가 취소되거나 조직이 개편되는 등 과학계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내용이 소개됐다.
세계 보건에서는 주요 국가들이 글로벌 보건 지원을 줄이면서, 감염병·영양실조 대응을 맡아온 국제기구들의 재정이 악화되고 현장 프로그램이 위축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학술 출판 생태계에선 페이퍼 밀(논문 공장), 연구 부정, 생성형 AI를 악용한 부실 논문이 늘어나며 과학 문헌의 신뢰를 갉아먹고 있다는 분석이 제시됐다. 일부 출판사가 자동 걸러내기, 투고 중단 등 강경 조치를 시작했지만 부정 행위의 자동화도 함께 진화하고 있어, 신뢰 회복이 핵심 과제가 될 것이라고 봤다.
참고 자료
Science(2025), DOI: https://doi.org/10.1126/science.z57oqn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