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이 복잡한 기계장치 없이 종이접기 원리로 크기가 늘어나는 바퀴를 개발했다./카이스트

달 표면의 거대한 구멍 '피트'와 지하 용암 동굴은 우주 방사선과 극심한 온도 변화를 피할 수 있는 천연 피난처로 주목받지만, 가파른 절벽과 낙석 위험 때문에 로버가 접근하기 어려웠다. 국내 연구진이 복잡한 기계 장치 없이도 바퀴 크기를 접었다 펼 수 있는 종이접기 원리의 바퀴를 개발해, 소형 로버의 장애물 돌파 능력을 높이는 데 성공했다.

이대영 카이스트 우주연구원·항공우주공학과 교수 연구진은 무인탐사연구소, 한국천문연구원,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양대와 함께 '전개형 에어리스 휠'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고 18일 밝혔다. 에어리스 휠은 공기를 넣지 않는 바퀴로, 극한 환경에서도 형태를 유지하기 쉬워 우주 탐사 장비에 적합한 방식으로 꼽힌다.

달의 피트와 용암동굴은 거주 가능성뿐 아니라 연구 가치에서도 핵심 표적으로 꼽힌다. 심채경 천문연 행성탐사센터장은 이날 인터뷰에서 "피트는 지질 단층이 자연스럽게 드러난 곳이라 표면 지각이 어떻게 구성돼 있는지 엿볼 수 있는 좋은 장소"라며 "용암동굴은 과거 화산 활동이 남긴 '기록 보관소'에 가깝다. 벽면의 흔적을 분석해 마그마의 성분이나 흐른 양상 등을 추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접근 방식이다. 그동안 주요 우주 기관은 대형 로버가 근처까지 간 뒤 소형 로버를 내려보내는 방식을 제시해 왔다. 하지만 소형 로버의 작은 바퀴는 턱이나 바위 같은 장애물을 넘는 데 불리해 기동성 확보가 쉽지 않았다. 바퀴 형태를 바꾸는 가변형 휠 아이디어도 있었지만, 달은 낮과 밤의 온도 차가 커 재료가 고르게 늘고 줄지 않거나 달 먼지가 기계 틈새에 들어가 마모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었다.

연구진은 종이접기 구조와 소프트 로봇 개념을 결합해 접었다 펼칠 수 있는 전개형 에어리스 휠을 개발했다. 힌지(경첩)나 기어처럼 복잡한 부품을 늘리는 대신, 탄성이 좋고 우주 환경에서 버틸 수 있는 얇은 띠 형태의 금속판을 엮고 맞물리게 설계해 바퀴 형태를 만든 것이다.

이대영 교수는 "평면의 띠를 엮어 바퀴 모양을 만들고, 그 구조가 변형되면서 지름이 커졌다 작아지게 한다"며 "소재로는 합금의 한 종류인 스테인리스강을 활용했다"고 말했다.

우산이나 접이식 캠핑 컵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우산은 접혀 있을 때는 얇고 길쭉하지만 펼치면 면적이 크게 넓어진다. 이 바퀴도 마찬가지로, 금속판에 휘어지는 부분을 미리 설계해 작게 접힌 상태와 크게 펼친 상태를 오가게 한다.

개발한 바퀴는 접혀 있을 때는 지름이 약 23㎝지만 펼치면 50㎝까지 커진다. 바퀴의 크기를 줄여 작은 로버에 실어 보내고, 험지에서는 바퀴 지름을 키워 턱을 넘는 능력을 높일 수 있다.

전개형 에어리스 휠이 접었다 펴지는 모습./대전=홍아름 기자

연구진은 달 흙과 비슷한 조건을 흉내 낸 시험장에서 주행 성능을 확인했다. 달 중력 기준으로 100m 높이에서 떨어뜨리는 상황에 해당하는 충격을 가해도 형태와 기능이 유지될 만큼 내충격성도 확인됐다.

조남석 무인탐사연구소 대표는 "개발에 3년 가까이 걸렸는데, 설계보다 시험하면서 변형되는 부분을 잡고 개선하는 과정이 더 어려웠다"며 "드론을 활용한 낙하 실험 등 반복 검증이 시간의 대부분을 차지했다"고 전했다.

동굴 탐사에 맞춘 현장형 시험도 진행됐다. 연구진은 제주도의 동굴에서 경사 구간과 단차 구간을 대상으로 주행 시험을 했다. 제주 동굴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출입이 제한되지만, 관계 기관의 허가를 받아 동굴에서 국내 첫 로봇 실험을 진행할 수 있었다.

다만 이날 실제로 본 바퀴는 시연 과정에서 흔들림이 비교적 컸다. 달 탐사에서 주행 중 흔들림이 문제가 되지 않냐는 질문에 장종태 항우연 책임연구원은 "바퀴가 스프링 같은 탄성 구조이기 때문에 흔들림이 생길 수 있고, 로버에 장착된 카메라 영상 안정성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향후에는 바퀴 소재를 최적화하고, 흔들림을 보정할 수 있는 알고리즘이나 안정화 기술을 결합할 것"이라고 말했다.

열도 중요한 변수로 꼽힌다. 장 연구원은 "달 적도의 온도는 최고 120도까지 올라가는데, 시뮬레이션 결과 바퀴 표면 온도가 이보다 훨씬 높은 230도까지 나왔다"며 "바퀴와 연결된 모터 등에 부담이 될 수 있는 만큼 열 차단재를 적용하거나 방열 설계를 보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성과는 세미나와 워크숍에서 만난 대학과 기업, 정부출연연 연구진이 자발적으로 협력해 만든 결과물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조 대표는 "미국과 일본은 우주 로봇을 대학과 기업, 정부 기관이 함께 만드는 구조가 일반적인데, 국내에서도 그런 협업 모델을 실제 성과로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이대영 교수는 "그동안 누구도 제대로 풀지 못한 피트·용암동굴 진입 문제에 대해 세계 최초로 해답을 제시한 기술"이라며 "아직 국내에서는 달 탐사 로봇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단계는 아니지만, 향후 관련 공모가 나오면 제안해 참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앞서 우주항공청은 2032년 무인 달 착륙선을 발사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한 바 있다. 심채경 센터장은 "한국은 달 탐사 분야에서 후발 주자지만, 여전히 세계 최초로 발견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며 "이번 연구를 포함해 우리만의 독창적인 탐사 임무를 기획해 수행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연구 결과는 로봇 분야의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로보틱스'에 18일 게재됐다.

참고 자료

Science Robotics(2025), DOI: https://doi.org/10.1126/scirobotics.adx25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