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반세기 동안 발사된 수천 개의 위성에서 나온 잔해가 흩어진 모습을 상상해서 그린 그림. /유럽우주국(ESA)

지구 궤도를 도는 위성들이 태양 폭풍 같은 천재지변을 만나 갑자기 서로를 피할 수 있는 능력(회피 기동 능력)을 잃게 된다면, 단 2.8일 만에 큰 충돌이 발생할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최근 몇 년 사이 미국 스페이스X와 중국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저궤도 위성망을 확충하면서 지구 궤도가 위성으로 빽빽해지자, 충돌 위험도 갈수록 커진다는 분석이다.

◇폭증하는 위성, 충돌 가능성 커졌다

과학 전문 매체 '뉴 사이언티스트'는 우주 환경 연구자인 미 프린스턴대 사라 티엘 연구원 등이 발표한 연구를 16일 소개했다.

최근 지구 저궤도엔 위성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스페이스X의 스타링크 위성만 해도 340~550㎞ 저궤도에 9000기 이상이 띄워져 있다. 지난 7년 동안 지구 궤도의 위성 수는 4000기에서 약 1만4000기로 급증, 3배가 넘게 늘어났다.

연구팀은 이렇게 위성들이 계속 많아질 경우, 우주 충돌의 위험도 그만큼 커질 수 있다고 봤다. 드물지만 태양 폭풍이나 대규모 전력·통신 장애, GPS·궤도 예측 시스템 동시 오류 같은 일이 발생하면서 위성들이 기동 능력을 잃으면 충돌이 발생하고, 이 때문에 지구 저궤도 일부를 사용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충돌 위험을 정확히 분석하기 위해, 최근 공개된 위성 개수와 위치 데이터를 활용한 '충돌 시계(CRASH Clock)'라는 지표도 새로 만들었다.

분석 결과, 모든 위성이 회피 기동 능력을 잃게 된다고 가정했을 때 2018년 스타링크 위성망이 구축되기 전엔 첫 충돌까지 121일이 걸렸지만, 2025년엔 같은 조건에서 2.8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사라 티엘은 "우리도 충돌 위험이 이 정도로 커졌을 줄은 몰랐다"고 했다.

◇가능성은 낮지만, 정말 충돌할 순 있다

그렇다면 지구 저궤도에 떠 있는 모든 위성의 회피 기동이 멈추는 상황이 정말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일까? 과학자들은 "확률이 무척 낮긴 하지만, 위험 가능성은 있다"고 말한다.

만약 강력한 태양 폭풍이 불면 위성 시스템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실제 2024년 5월엔 강력한 태양 폭풍이 발생했는데, 이때 스타링크 위성 일부가 물결처럼 흔들리는 현상이 관측되기도 했다.

1859년에도 사상 최강의 태양 폭풍이 불어 지구 자기장이 심하게 뒤흔들렸던 이른바 '캐링턴 사건'이 있었다. 당시 전 세계에서 오로라가 관측됐고, 전신 설비에 불이 붙거나 고장 나는 피해가 속출했다. 이때만 해도 위성이 없었기 때문에 지상 전신망 위주로 피해를 보는 데 그쳤지만, 지금처럼 위성 수만 기가 하늘에 떠 있는 상황에서 태양 폭풍이 불어닥친다면 어마어마한 위성 충돌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궤도에서 위성이 충돌한 경우도 있었다. 2009년 미국 위성통신업체 이리디움 커뮤니케이션스의 위성이 폐기된 러시아 코스모스 위성과 충돌한 사건이다. 이 사고로 생긴 파편 수백 개는 지금도 지구 궤도를 떠돌고 있다. 문제는 앞으로도 지구 저궤도 위성 수가 더 늘어날 것이라는 데 있다.

최근엔 스페이스X뿐 아니라 아마존도 '레오(Leo)'라는 이름의 위성망 서비스를 시작했다. 중국 역시 '궈왕' '첸판' 등 위성망을 구축하기 위해 각각 수만 기의 위성을 더 발사한다는 계획이다. 충돌 시계 기간이 더 짧아질 수 있다는 얘기다.

영국 버밍엄대 우주항공학과 휴 루이스 교수는 "우리는 카드로 만든 집 위에 계속 카드를 얹고 있는 셈이다. 카드가 많아질수록, 무너질 때의 붕괴도 더 커진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