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원자력·소형 위성·인공지능(AI) 등 국가 안보와 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국가 전략 기술' 연구 분야 90%에서 세계 1위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20년 전에는 미국이 94%로 압도했는데 전략 기술 연구 리더가 미국에서 중국으로 완전히 넘어간 것이다. 연구 순위는 앞으로 상용화할 기술의 선행 지표라는 점에서 전략 기술 산업 분야에서도 중국이 글로벌 장악력을 빠르게 키워나갈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제 학술지 네이처는 12일(현지 시각) 호주전략정책연구소(ASPI)의 '전략 기술 추적(Critical Technology Tracker) 2025' 결과를 인용하며 "중국이 핵심 기술의 90%에서 연구를 주도하고 있고, 이는 이번 세기에 일어난 극적인 변화"라고 전했다. ASPI는 생성형 AI를 비롯해 74개 전략 기술 분야의 최근 20년간 논문 900만 편 중에서 2020~2024년 5년간 각 분야에서 인용이 가장 많이 된 순으로 영향력 있는 상위 10% 논문을 선정했다. 이를 분석해 국가별 연구 영향력을 평가한 결과, 중국이 66개(89.2%) 전략 기술 연구에서 세계 1위로 집계됐다. 미국은 양자 컴퓨팅 등 8개 분야에서 1위였다.
2003~2007년에는 64개 전략 기술 연구 중에서 3개(4.7%)에서만 선두였던 중국이 20년 만에 대부분 연구에서 세계 최고가 된 것이다. ASPI가 집계한 국가 전략 기술은 '결정적 기술'로도 불리며, 국방과 산업에 동시에 쓰일 수 있는 이른바 '이중 용도(dual-use)' 기술이다. 국가 운명을 결정짓는 전략 기술 연구에서 중국이 압도적 성과를 낸다는 평가다.
◇전략 기술 논문 1위… 20년 전 美가 94%, 지금은 中이 90%
중국은 올해 집계에 추가한 클라우드(가상 서버) 컴퓨팅 등 10개 신기술 분야 중 8개 분야에서 연구 경쟁력 세계 최고로 조사됐다. 생성형 AI 연구를 포함해 AI 생태계 전반의 전략 기술 연구에서 중국이 최고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ASPI는 클라우드 및 엣지 컴퓨팅, 컴퓨터 비전, 생성형 AI, 전력망 통합 기술 등 4개 분야 전략 기술 연구는 중국의 '기술 독점 위험'(Technology Monopoly Risk·TMR)이 매우 크다고 밝혔다. 지금 추세면 중국에 연구 역량이 과도하게 집중돼 세계 각국의 기술 의존 위험이 커진다는 것이다. 네이처는 "중국 정부가 AI를 연구실 단계에서 실제 적용 단계로 옮기기 위해 얼마나 과감하게 나서는지 보여주는 결과"라고 전했다.
중국과학원(CAS)은 31개 전략 기술 분야에서 세계 1위 연구 기관으로 집계됐다. 중국 칭화대는 5개 전략 기술 연구에서 1위에 올랐다. 한국은 전력용 수소 및 암모니아 연구에서 2위에 오른 것을 비롯, 32개 연구 분야에서 상위 5위 안에 들었다. 일본은 4개 분야에서 상위 5위 안에 오르는 데 그쳤다. 인도는 50개 분야에서 상위 5위 안에 든 것으로 집계됐다.
일각에서는 이번 ASPI 집계가 학문적 성장세를 평가하는 데는 의미 있지만 기술 경쟁력으로 단정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번 결과가 놀랍기는 하지만 '미국의 기술 패권 붕괴'로 해석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것이다. 예컨대 중국이 '첨단 항공기 엔진' 연구에서 1위지만, 실제 성능과 신뢰성에서는 여전히 미국과 유럽 엔진에 미달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중국이 연구자 수가 워낙 많아 논문 피인용에서 유리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상위 1% 피인용 논문을 쓴 최정상급 연구자들은 여전히 미국에 가장 많다. 앞서 지난달 클래리베이트가 발표한 '2025년 최고 연구자(HCR)' 국가 순위에서 미국은 세계 1% 과학자 2670명을 보유해 1위였고, 중국은 1406명으로 2위였다.
그럼에도 국가 전략 기술 경쟁력은 단기 성과가 아닌 10~20년에 걸친 누적 투자와 연구의 결과라는 점에서, 이번 ASPI 분석을 간과하면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ASPI는 "점진적 정책 수정만으로는 격차를 뒤집기 어렵다"며 "동맹국들이 비교 우위를 결집하고 과감하게 협력하지 않는다면, 국가 전략 기술의 주도권이 중국으로 더욱 기울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