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만 년 전 네안데르탈인이 황철석을 돌도끼에 부딪혀 불씨를 만드는 모습의 상상도./영국 대영박물관

그리스 신화에서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준 죄로 바위에 묶인 채 독수리의 공격을 받는 벌을 받았다. 그가 제우스의 불을 훔친 시간이 35만 년이나 앞당겨졌다. 지금까지 인간이 불을 썼다고 보여주는 가장 오랜 증거는 5만 년 전 것이었는데, 영국에서 40만 년 전 불을 사용한 흔적이 발견됐다.

영국 대영박물관의 닉 애슈턴(Nick Ashton) 교수 연구진은 "영국 남동쪽 서퍽주의 한 들판에서 40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가장 오래된 불 사용 증거를 발굴했다"고 11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밝혔다.

불을 만드는 능력은 신화에서 프로메테우스가 그렇게 심한 형벌을 받을 정도로 인류 진화에서 중대한 전환점이었다. 불을 피워 추위를 막고, 음식을 익혀 먹으면서 영양 상태가 좋아져 뇌가 급속도로 커졌다. 그 결과 인간 사회도 발전했다. 이번에 확인한 시간이 맞는다면 멸종한 인류의 친척인 네안데르탈인이 먼저 불을 썼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증거가 된다.

◇40만 년 전 화덕 일부와 부싯돌 확인

인류는 처음에 자연 발생한 화재에서 불씨를 가져다 썼다고 추정된다. 아프리카에서는 인류가 100만 년 전부터 자연 발생한 화재를 이용했음을 보여주는 유적지가 나왔다. 인간이 일부러 불을 붙였다고 알려진 가장 오래된 증거는 프랑스 북부에서 발견된 5만 년 전 유물이었다. 이번에 서퍽주 반햄의 구석기 시대 유적지에서 나온 증거는 그 시기를 무려 35만년이나 앞당겼다.

연구진은 반햄 유적지에서 불에 가열된 점토 조각과 열에 파손된 부싯돌 손도끼, 황철석 조각 두 개를 발굴했다. 4년에 걸쳐 분석한 결과 점토는 산불에 탄 게 아니라 일부러 붙인 불에 탄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진은 "점토가 같은 곳에서 반복해 섭씨 700도 이상 가열됐다"며 "점토가 나온 곳이 당시 사람들이 사용한 야영지였거나 화덕일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황철석은 천연 광물로, 부싯돌과 부딪히면 불꽃이 생겨 마른 나뭇가지에 불을 붙이는 데 사용할 수 있다. 발굴 지역에서 황철석이 희귀하다는 점은 당시 인류가 불을 피울 목적으로 일부러 다른 곳에서 가져왔음을 시사한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캐나다 퀘벡대의 고고학자인 세골렌 반데벨드(Ségolène Vandevelde) 교수는 이날 네이처에 실린 논평 논문에서 "이번 논문은 설득력이 있다"며 "화염 흔적과 연관된 황철석 발견은 인류에 의한 가장 오래된 화염 제조 사례를 뒷받침하는 쐐기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40만 년 전 유적지에서 발견된 손도끼(왼쪽). 열에 파손된 상태였다. 오른쪽은 2017년 해당 유적지에서 발견된 황철석이다. 둘을 부딪혀 불씨를 만들었다고 추정된다./Jordan Mansfield

◇네안데르탈인 뇌 키운 시기와 일치

이번 연구 결과는 당시 고인류인 네안데르탈인이 불을 사용한 증거로 설명된다. 네안데르탈인은 40만 년 전 아프리카를 떠나 유라시아에 정착했다. 4만 년 전 멸종하기까지 현생 인류의 직계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와 1~2만 년간 공존했다. 호모 사피엔스는 7만 년 전쯤 아프리카를 떠나 중동으로 이주했다.

논문 공저자인 영국 자연사박물관의 크리스 스트링어(Chris Stringer) 교수는 "40만 년 전 반햄에서 불을 사용한 사람들은 켄트주 스완스컴과 스페인 아타푸에르카에서 발견된 동시대 화석의 형태학적 특징을 고려할 때 초기 네안데르탈인일 가능성이 높다"며 "해당 화석들에서는 초기 네안데르탈인의 DNA도 나왔다"고 말했다.

네안데르탈인이 불을 사용했다는 사실은 이전에도 확인됐다. 지난 7월 네덜란드 라이덴데 연구진은 네안데르탈인이 12만 5000년 전부터 불을 피워 동물 뼈에서 지방을 추출한 증거를 찾았다고 밝혔다. 지금까지는 호모 사피엔스가 2만 8000년 전에 동물 뼈를 가공한 것이 가장 오랜 기록이었는데, 인류의 사촌은 그보다 훨씬 앞섰던 것으로 밝혀졌다.

네덜란드 연구진은 독일 중부 지역에서 잘게 조각난 대형 동물의 뼛조각들과 숯이나 그을린 화강암처럼 불을 피운 흔적을 발견했다. 연구진은 뼈를 끓여 열량이 높은 골수 지방을 뽑아낸 증거라고 추정했다. 하지만 불을 피우는 데 쓴 도구는 찾지 못했다.

연구진은 이번에 찾은 도구들의 연대는 네안데르탈인의 뇌 크기가 현대 수준에 근접했던 시기와 일치한다고 밝혔다. 인류가 낙뢰나 산불에 의존하지 않고도 어디서든 불을 피울 수 있게 되면서 추운 곳에서도 살 수 있게 됐다. 무엇보다 뿌리식물과 육류를 익혀 먹으면서 독소를 없애고 소화도 잘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전보다 훨씬 커진 뇌에 필요한 연료를 공급할 수 있었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불은 사회 발전도 촉발했다. 연구진은 "밤에 불을 피워 사냥이나 채집에 필요한 정보를 나누고 도구를 만들 수 있어 사회가 급속히 발전했다"며 "불을 통해 인간은 더 크고 복잡한 사회 집단에서 먹이를 구하고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퀘벡대의 반데벨드 교수는 "불을 피우는 능력이 이토록 오래되었다면, 불의 숙달과 습관적 사용은 더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며 "앞으로 고대 유적지에서도 화염 흔적을 더 면밀히 탐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참고 자료

Nature(2025), DOI: https://doi.org/10.1038/s41586-025-09855-6

Nature(2025), DOI: https://doi.org/10.1038/d41586-025-03735-9

Science Advances(2025), DOI: https://doi.org/10.1126/sciadv.adv12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