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앞둔 성체 개미들은 주변에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둥지를 스스로 떠난다. 일시적으로 감염됐을 때에도 일종의 '사회적 거리 두기'를 통해 동료 개미와 접촉을 최소화한다. 그러나 유충에서 성충으로 변하는 번데기 단계에서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어 감염 확산을 막기가 어렵다. 그렇다면 번데기는 어떻게 집단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지 않을까.
오스트리아 과학기술연구원(ISTA) 연구팀은 그 해답을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최근 호에 발표했다. 연구에 따르면 병든 번데기는 자신을 제거해 달라는 신호로 특정 화학물질을 능동적으로 방출한다. '남을 위한 극단적 선택'을 통해 감염 확산을 차단하는 셈이다.
연구팀은 감염된 번데기 옆에 일개미가 있을 때와 없을 때, 정상 번데기 옆에 일개미가 있을 때와 없을 때 등 네 가지 조건에서 행동과 화학 성분 등을 비교했다. 분석 결과, 감염된 번데기는 주변에 일개미가 있을 때만 특정 탄화수소 성분을 뚜렷하게 증가시켰다. 이는 "내가 감염됐으니 제거해 달라"는 일종의 화학 신호다.
이 신호를 감지한 일개미는 번데기를 고치에서 꺼낸 뒤 몸을 씹어 손상시키고, 개미산(포름산)을 발라 소독하는 '파괴적 소독' 행동을 했다. 개미산은 곰팡이를 죽이는 강력한 항균 물질이다. 이 과정에서 번데기도 죽지만, 병원체가 더 이상 증식하지 못하도록 막아 개미 집단 전체를 보호한다.
연구팀은 번데기가 방출하는 화학물질이 감염의 부산물이 아닌 '의도적 신호'임을 각종 화학 분석을 통해 확인했다. 이는 개별 개체의 면역이 실패했을 때 집단 차원의 방어 체계가 가동되는 정교한 사회적 면역 전략으로 해석된다.
다만 여왕개미 번데기는 감염되더라도 이러한 신호를 내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여왕 번데기는 일벌 번데기보다 선천적 면역력이 훨씬 높아 감염이 진행되다가도 다시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다"며 "스스로 회복할 수 있기 때문에 신호를 내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연구팀은 여왕 번데기가 회복 가능성이 없을 만큼 심각하게 감염됐을 때에도 신호를 내지 않는지 향후 연구로 확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