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Ⅱ)가 발사된 27일 새벽 고흥우주발사전망대에서 지켜보던 관람객들이 스마트폰으로 촬영하고 있다./뉴스1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Ⅱ)가 27일 새벽 네 번째 발사에 성공했다. 한국 우주 개발의 주도권이 정부에서 민간으로 본격 이양되는 시점에 이뤄진 성과로, 산업과 기술 측면에서 중대한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누리호는 이날 오전 1시 13분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이륙해 약 18분간 비행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주 탑재체인 차세대 중형위성 3호를 목표 궤도에 정확히 올려놓은 데 이어, 총 12기의 큐브 위성을 순차적으로 분리하는 데 성공했다.

이번 발사는 체계 종합 기업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발사체 준비 전 과정을 책임진 첫 사례다. 전문가들은 이번 성공을 한국이 '뉴스페이스' 시대로 본격 진입했다는 신호로 해석한다. 뉴스페이스는 민간 기업이 우주 개발을 주도하는 시대를 말한다. 한국에서도 미국 스페이스X·블루오리진처럼 민간 기업이 우주 발사 산업의 중심축으로 나설 기반이 마련됐다는 것이다.

민간 주도 전환 흐름은 최근 몇 년간 단계적으로 추진돼 왔다. 그동안 국내 발사체 개발은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이 중심이 돼왔지만, 정부는 누리호 3차 발사 이후부터 발사체 설계·제작·조립·운용 전반을 민간에 이양하는 '기술 이전 로드맵'을 가동해 왔다. 이 과정에서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체계 종합 기업으로 선정되면서 사실상 한국판 '스페이스X' 역할을 수행하게 된 것이다.

해외에서는 민간이 발사 산업의 중심이 된 지 오래다. 미국은 2010년대 초반 미 항공우주국(NASA)이 발사체를 직접 개발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발사 서비스를 민간 기업에 맡기는 구조로 전환했다. 이로 인해 발사 비용이 낮아지고 발사 빈도는 크게 늘었으며, 민간 주도의 '뉴스페이스 생태계'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토대가 마련됐다.

고정환 항우연 책임연구원(전 한국형발사체고도화사업단장)은 조선비즈와의 통화에서 "누리호 3차 발사 때도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참여했지만, 이미 발사체 조립은 대부분 해놓은 상태였다"며 "이번 4차 발사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발사체 전체를 준비했다. 그만큼 민간 기업이 우주 개발을 주도하는 '뉴스페이스' 시대로 본격적으로 접어들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기술 신뢰성 확보와 연구 플랫폼 확장

이번 발사는 산업 구조 변화뿐 아니라 기술적 측면에서도 누리호가 '신뢰 가능한 발사체' 단계로 진입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이정표로 평가된다.

앞서 누리호는 2022년 6월 2차 발사에서 처음으로 성능검증 위성과 큐브위성을 궤도에 올리면서 '국내 기술로 설계·제작된 발사체로 실제 위성을 쏘아올린 것'으로 기록됐다. 이후 2023년 5월 3차 발사에서는 실용 위성과 큐브위성을 실어 궤도 진입에 성공하며, 누리호의 우주 수송 능력이 반복 가능한 체계임을 입증했다.

진정근 카이스트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는 "이번 발사는 단순한 시험을 넘어 민간 기술 이전과 발사체 신뢰성 확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며 "누리호는 반복 시험을 통해 신뢰성을 검증하는 과정에 있으며, 2·3차 발사 성공과 연계해 이번 발사는 발사체 안정성 확보에 핵심적인 단계"라고 말했다.

특히 이번 발사에서는 누리호의 탑재 역량을 활용한 '한국판 우주 실험실'이 본격 가동됐다. 위성부 총 중량은 약 960㎏으로, 지난 3차 발사(약 500㎏)보다 거의 두 배 증가했다.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Ⅱ)가 27일 새벽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에서 4차 발사를 맞아 우주로 날아오르고 있다. 차세대중형위성 3호(1기)를 비롯해 큐브위성 12기 등 총 13기의 위성을 실은 누리호는 오로라를 비롯한 우주환경 관측부터 항암제 연구 등 우주 바이오 실험까지 다양한 임무를 추진한다./뉴스1

여기에 새롭게 도입된 다중 위성 어댑터(MPA)는 제한된 페어링 내부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해 다수의 소형 위성을 동시에 탑재할 수 있게 해주고, 분리 충격을 줄여 각 위성을 안정적으로 분리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다양한 위성이 한 번에 실증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셈이다.

이번 발사에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개발한 차세대 중형위성 3호 외에도 국내 기업과 연구기관, 대학이 개발한 큐브위성 12기가 실렸다. 우주과학 연구부터 우주의약, 통신, 우주 교통 관리, 환경 감시 등 국내 우주 기술을 한 번에 시험대에 올리는 장면이 연출됐다.

스페이스X가 정기 발사를 통해 미국 우주 기술 실증 생태계를 폭발적으로 확장시킨 것처럼, 누리호의 탑재 능력 확대는 국내 민간 기업과 연구기관 등의 우주 실험 기회를 비약적으로 늘릴 수 있는 구조적 변화로 이어질 전망이다.

진 교수는 "국내에서 개발된 우주 기술 검증을 위한 소형위성 수송 플랫폼을 확보하게 되어 다양한 국내 우주 기술 발전의 촉매제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 민간 생태계의 지속성은 과제… "반복 발사 경험이 생명선"

일각에서는 민간 우주 생태계가 자립적으로 유지될 수 있느냐는 우려도 적지 않다. 손재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표는 브리핑에서 "3차와 4차 발사 사이 2년 6개월의 공백 동안 기술 인력이 이탈하는 등 생태계 유지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공백이 반복될 경우 민간의 발사 역량이 약화될 수 있다며, 반복 발사 경험의 꾸준한 축적이 생태계 유지의 필수 조건이라고 지적한다.

고 연구원은 "미국도 뉴스페이스 시대가 하루아침에 열린 것이 아니라, 60년이 넘는 국가 투자와 기술 축적의 과정이 있었다"며 "한국도 꾸준한 정부 지원 아래 민간으로 기술이 안정적으로 이양돼야 혁신이 가능하다"고 했다.

정부도 이를 인식하고 발사 주기 공백을 줄이기 위해 제도 개선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윤영빈 우주항공청장은 "2028년부터 누리호 7차 발사를 목표로 내년 예산을 준비하고 있다"며 "8차 발사 이후부터는 매년 한 차례 이상 정례 발사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안형준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시스템혁신실 우주공공팀(SPREC) 팀장은 "누리호 4차 발사 성공은 한국이 정부 주도 우주개발에서 민간 중심 뉴스페이스 체제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정점"이라며 "이러한 흐름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누리호 헤리티지 사업'을 통해 반복 발사 기반을 유지하고, 공공이 최소한의 상업 수요를 지지하는 브리지 프로그램을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 팀장은 이어 "발사체의 상업적 가격 경쟁력만으로 누리호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며 "우주 접근 수단의 자립은 국가 안보와 전략기술 측면에서 필수적인 자산이기 때문에, 발사체의 정책적 위상을 명확히 정리하고 중기재정계획에 반영할 예산을 안정적으로 확보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