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Ⅱ)가 4차 발사에 성공하며 국내 우주 개발 역사에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 이번 발사는 체계 종합 기업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제작부터 조립까지 책임진 첫 성공 사례이자, 누리호가 처음으로 위성 13기를 한꺼번에 실어 올린 발사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우주항공청과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은 27일 오전 2시 40분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브리핑을 열고 누리호 4차 발사가 정상적으로 완료됐다고 공식 발표했다.
윤영빈 우주항공청장은 "누리호의 신뢰성을 끌어올리고, 한국이 자주적으로 우주를 개척할 수 있는 역량을 다시 입증한 계기"라고 평가했다.
◇엄빌리컬 센서 이상으로 발사 18분 지연
누리호는 이날 오전 1시 13분 발사됐다. 당초 목표 시각은 0시 55분이었지만, 엄빌리컬 타워의 센서 이상 신호로 발사가 18분 지연됐다. 엄빌리컬 타워는 발사체에 전력·연료·냉각제 등을 공급하는 연결 장치로, 발사 직전까지 발사체를 지탱하고 필요한 자원을 공급한다.
박종찬 항우연 한국형발사체고도화사업단장은 "누리호를 고정하는 장비에 연결된 센서 일부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확인 시간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현장 점검 결과, 실제 고정 장비는 정상으로 확인됐고 센서만의 문제임이 확인돼 발사 준비 과정이 그대로 진행됐다.
발사 시각이 1시 13분으로 정해진 배경에는 '발사 윈도우'라는 개념이 있다. 발사 윈도우는 발사체가 목표 궤도에 정확히 올라갈 수 있는 '가능한 시간대'를 뜻한다. 지구의 자전, 위성 목표 궤도의 위치, 발사체 성능 등 다양한 요소가 맞물려 정해지는 시간이다. 이번 누리호의 발사 윈도우는 0시 54분~1시 14분이었다.
박 단장은 "발사 윈도우 안에서 가장 안정적으로 준비를 마칠 수 있는 시각을 검토했다"며 "최대한 점검 시간을 벌 수 있는 발사 윈도우 종료 직전인 오전 1시 13분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안정적인 초기 비행과 단계별 분리
누리호는 이륙 직후 안정적으로 상승했고, 발사 후 2분 2초쯤 고도 65.7㎞에서 1단 분리가 이뤄졌고, 3분 50초 후에는 고도 211.1㎞에서 페어링(위성 덮개)이 열려 분리됐다. 4분 23초 이후에는 고도 263.1㎞에서 2단이 분리되고 3단 엔진이 점화됐다.
다만 발사 이후 과정은 연구진이 사전에 예측한 속도보다 다소 빠르게 진행됐다. 당초 예상한 비행 종료 시간은 약 21분이었으나 발사 후 약 18분 만에 비행이 끝났다.
이에 대해 박 단장은 "누리호 1·2·3단 엔진의 실제 성능이 예상보다 좋아 주요 이벤트가 더 빠르게 달성됐다"며 "연소 종료 역시 빨리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이번 비행의 핵심은 주탑재체인 차세대중형위성 3호를 목표 궤도에 올려놓는 것이었다. 위성은 발사 약 13분 11초 뒤 목표 고도 601.3㎞에서 성공적으로 분리됐고, 이후 오전 1시 55분 남극 세종기지 지상국과의 교신에도 성공했다. 우주청은 초기 교신을 통해 차세대중형위성 3호의 태양전지판 전개 등 위성 상태를 확인했다.
향후 우주청은 대전 항우연 지상국과 남극 세종기지, 노르웨이 스발바르 해외 지상국과의 교신을 통해 위성의 상태를 정밀하게 확인할 예정이다. 항우연 지상국과의 교신은 27일 오전 2시 39분, 오전 11시 57분쯤 진행되며, 해외 지상국과의 교신은 27일 오전 중에 14차례 진행될 예정이다.
나머지 큐브 위성 12기도 발사 후 13분 34초부터 15분 14초까지 정해진 순서대로 사출됐다. 최종 비행 고도는 601.3㎞로, 이번 발사 성공 기준인 565~635㎞ 범위를 충족했다. 항우연은 추후 교신을 통해 상태를 확인할 예정이다.
◇한화 주관 첫 성공… 민간 중심 발사체 개발 본격화
이번 발사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발사체 제작·조립을 맡아 수행한 첫 성공이기도 하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항우연과 함께 2027년까지 누리호를 두 차례 더 발사할 계획이다.
박 단장은 "5·6차 발사부터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발사 운용 분야에도 더 깊이 참여할 것"이라며 "실제 참여 인원도 늘리고, 발사 운용 콘솔을 한화 직원들이 주도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손재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표는 "3차와 4차 발사 사이 2년 6개월 공백이 있어 우주 산업 생태계를 유지하는 것이 힘들었으나 협력 업체들과 함께 이를 극복했다"며 "우주 기술은 신소재, 인공지능(AI), 통신, 국가 안보 등 모든 분야의 기반이 되는 만큼 발사체 기술 발전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윤영빈 청장은 향후 계획에 대해 "2027년까지 누리호 6차 발사를 완료하고, 2028년부터는 7차 발사를 준비할 예정"이라며 "이를 고려해 내년 예산을 계획하고 있으며, 8차 발사 이후부터는 매년 한 차례 이상 누리호를 발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도 발사 현장을 찾아 "이번 성공은 한국이 독자적인 우주 수송 능력을 갖췄음을 다시 보여준 자리"라며 "정부와 민간, 국가 연구소가 한 팀이 되어 진행한 민관 공동 발사로, 한국 우주 생태계가 정부 중심에서 민간 중심으로 전환되는 자리"라고 말했다.
이어 "오늘 성공을 밑거름 삼아 차세대 발사체 개발, 달 탐사, 심우주 탐사 등 우주 강국으로 도약하는 길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