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미 항공우주국(NASA·나사)의 무인 탐사선 보이저 1호가 목성을 지나갈 때 구름 속에서 전기 방전으로 발생한 소리를 감지했다. 번개를 포착한 것이다. 2007년 목성에 근접한 탐사선 뉴호라이즌스와 2016년부터 5년간 목성을 관측한 주노 탐사선도 번개 섬광과 이로 인해 발생하는 매우 낮은 주파수의 전파를 감지했다.
그리스 신화에서 최고 신(神)인 제우스는 번개를 무기로 쓴다. 제우스의 로마식 이름은 목성의 영어명인 주피터이다. 보이저 탐사선은 1980년 토성에서도 번개가 만드는 전파 신호를 감지한 데 이어 이번엔 프랑스 과학자들이 화성에서 미세 번개가 만든 소리를 들었다. 제우스가 지구뿐만 아니라 태양계 다른 행성까지 다스리고 있는 셈이다.
◇먼지 폭풍에서 번개의 소리 감지
프랑스 천체물리학 및 행성학 연구소의 바티스트 시드(Baptiste Chide) 박사 연구진은 "나사가 화성에 보낸 로버(이동형 탐사 로봇)인 퍼서비어런스가 번개가 만든 소리와 전기 신호를 포착했다"고 27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이번 관측 결과는 화성 대기가 전기적으로 활성 상태임을 밝혀 앞으로 유인 탐사에도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지구에서 구름 속의 얼음 입자와 물방울이 마찰하면 전자가 이동해 위쪽은 (+) 전기, 아래쪽은 (-) 전기를 띤다. 옷감으로 풍선을 문지르면 정전기가 생기는 것과 유사하다. 위아래 전기량의 차이가 극에 달하면 일시에 전기에너지를 방출하는 방전이 일어나면서 번개가 발생한다.
연구진은 화성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번개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퍼서비어런스는 주변 소리를 감지하는 마이크를 갖고 있다. 연구진은 화성 기준으로 2년간 로봇의 마이크로 수집한 28시간 분량의 녹음 자료를 분석했다.
퍼서비어런스는 갑자기 소리가 발생한 사례 55건을 포착했다. 그중 7건이 전자기 간섭과 일치했다. 이러한 현상은 주로 바람이나 먼지 폭풍 또는 먼지 소용돌이(dust devil)가 퍼서비어런스 위를 지나갈 때 일어났다. 먼지 입자들의 마찰이 방전을 유발했다는 말이다.
◇유인 탐사의 위험 파악에 도움
지구에서 번개는 얼음과 물방울이 가득 찬 구름 속에서 발생한다. 하지만 화성은 대기 밀도가 지구의 1% 수준에 그쳐 번개가 치기 어렵다고 봤다. 프랑스 연구진은 이번에 지구의 번개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미세하지만 화성에서도 번개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지구의 번개는 길이가 ㎞ 단위이고 순간적으로 발생하는 전기에너지가 평균 50억줄(J)이다. 이는 100와트(W)짜리 전구 10만개를 1시간 동안 켜는 것에 맞먹는다. 반면 이번에 화성에서 감지한 번개는 길이가 최대 1㎝이고 에너지는 0.1~150나노줄(1나노줄은 10억분의 1줄)에 그쳤다. 미세 번개는 먼지 폭풍뿐 아니라 지표면에서도 감지됐다.
연구진은 로봇의 마이크가 몇 m 이내 소리만 감지한다는 점에서 그보다 더 먼 곳에서 발생한 번개는 포착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번개가 유발한 소리는 포착했지만, 카메라로 관측하지는 못했다.
이번 관측 결과는 앞으로 화성 유인(有人) 탐사에 도움을 줄 수 있다. 화성 먼지 속의 전기 활동은 산화 반응을 촉진해 유인 탐사에 나선 우주인과 장비에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다.
다니엘 미처드(Daniel Mitchard) 영국 카디프대 교수는 이날 네이처에 같이 실린 논평 논문에서 "화성에 첫 발을 디딘 사람이 깃발을 꽂는 순간 번개에 맞을 가능성은 희박하다"면서도 "정전기 같은 작은 방전 현상이 자주 일어나면 민감한 장비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화성의 번개 연구할 탐사 잇따라 좌초
미처드 교수는 "퍼서비어런스에 장착된 것보다 더 민감한 카메라를 장착한 탐사선을 화성에 보내 이번 발견을 확증하고 심층 연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금까지 다른 행성에서 관측된 번개는 지구와 비슷한 원리로 발생하지만 차이점도 뚜렷했다. 화성의 번개 역시 추가 연구가 필요한 이유이다.
뉴호라이즌스 탐사선은 2007년 목성에 근접해 지구보다 10배 강력한 번개 섬광을 포착했다. 2016년부터 목성을 탐사한 주노 탐사선은 목성의 번개는 지구처럼 초당 4회씩 발생하지만, 지구와 달리 고위도 지역에 집중됐다는 점을 알아냈다. 지구에서는 적도 지역에서 강한 번개가 친다. 가서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사실들이다.
아쉽게도 화성 대기의 방전 현상을 연구하기 위해 준비한 탐사 계획은 잇따라 좌절됐다. 유럽우주국(ESA)과 러시아 우주국이 함께 진행한 엑소마스(ExoMars) 프로젝트는 먼지 폭풍 동안 대기의 전기 활동을 측정하는 장비를 화성 표면에 보내려고 했지만 2016년 탐사선이 착륙 도중에 추락했다. 두 번째 엑소마스 임무는 2022년 중단됐다. 과연 화성에 치는 제우스의 작은 번개를 탐사할 주인공은 누가 될까.
참고 자료
Nature(2025), DOI: https://doi.org/10.1038/s41586-025-09736-y
Nature Communications(2023), DOI: https://doi.org/10.1038/s41467-023-38351-6
Nature Astronomy(2018), dOI: https://doi.org/10.1038/s41550-018-0442-z
Geophysical Research Letters(1979), DOI: https://doi.org/10.1029/GL006i006p00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