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가 담긴 디옥시리보핵산(DNA) 구조를 발견한 공로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한 미국의 과학자 제임스 왓슨(James Watson·97)이 지난 6일(현지 시각) 별세했다.
9일 AP, AFP 통신 등 외신은 왓슨이 뉴욕 롱아일랜드에 있는 호스피스 시설에서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왓슨은 영국 과학자 프랜시스 크릭(Francis Crick, 1916~2004), 모리스 윌킨스(Maurice Wilkins, 1916~2004)와 함께 DNA 이중나선 구조를 규명해 유전자 연구를 발전시킨 공로로 196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1953년 당시 25세의 왓슨은 37세인 크릭과 DNA가 두 가닥이 서로 나선형으로 꼬인 '뒤틀린 사다리' 구조라고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하며 생명과학 분야의 대전환을 열었다. 이를 통해 세포가 단백질을 합성하는 방식을 밝혀냈으며, 질병을 일으키는 유전자 돌연변이를 밝히고 이를 바로잡아 치료할 길을 열었다. 다만 유전자를 인위적으로 변형하는 일이 올바른지를 두고 생명 윤리 논쟁도 불렀다.
DNA 이중나선의 뼈대를 이루는 것은 당과 인산이고, 그 사이를 아데닌(A)·구아닌(G)·시토신(C)·티민(T)이라는 4가지 염기가 연결한다. 염기 A는 반대 가닥의 T, G는 C만 찾아 결합해 사다리 디딤대처럼 두 가닥을 연결한다. 왓슨은 1968년 저서 '이중나선'을 출간하며 크릭과 DNA의 3차원 구조를 최초로 규명한 과정을 알렸다.
왓슨은 나중에 DNA를 이루는 30억 염기쌍을 모두 해독하는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이끌며 과학 발전에 기여했다. DNA는 염기들이 배열된 순서에 따라 생명현상을 좌우하는 단백질을 만든다. 유전정보가 바로 염기서열인 것이다. DNA의 일부 염기서열이 메신저리보핵산(mRNA)으로 옮겨졌다가 단백질 합성 정보로 활용된다
그러나 왓슨은 말년에 인종차별 발언 논란에 휩싸이면서 학계에서 퇴출당했다. 그는 2007년 영국 언론 인터뷰에서 "모든 사회 정책은 흑인과 백인이 동등한 지적 능력을 갖췄다는 전제에서 출발하지만, 모든 실험 결과 이는 사실이 아니다"며 "흑인 직원을 다뤄본 사람들은 그게 진실이 아니란 걸 안다"고 말해 파문을 불렀다.
인터뷰 공개 직후 왓슨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생물학자'에서 인종차별주의자로 추락했고, 강연과 출판 기념회가 줄줄이 취소되며 강단에서도 퇴출됐다. 그는 뒤늦게 "내가 어리석었다"고 사과했지만, 연구소의 명예직 직위마저 박탈당했다. 그는 생활고에 시달리며 노벨상 메달을 경매 시장에 내놓기도 했다.
왓슨은 생전 여성에 대한 편견도 보였다. DNA 이중나선 발견은 미국의 여성 과학자 로절린드 프랭클린(Rosalind Franklin, 1920~1958)을 빼놓고 이야기하기 어렵지만 대중은 왓슨, 크릭만 주목했다. 당시 남성 위주의 사회적 분위기도 있었지만 왓슨마저 프랭클린을 동료 과학자로 대우하지 않았다.
프랭클린은 1960년대 후반 DNA 구조 규명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X선 회절 사진을 찍었다. 왓슨은 프랭클린의 연구 덕분에 이중나선 구조를 확신하게 됐음에도 "프랭클린이 립스틱을 바르지 않고 여성적인 옷차림을 하지 않는다"고 대놓고 말했다.
프랭클린은 1958년에 세상을 떠나 1962년 노벨상 공동 수상자가 되지 못했다. 노벨상은 생존자에게만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살았다 해도 학계의 편견에 밀려 수상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참고 자료
Nature(1953), DOI: https://doi.org/10.1038/171737a0
Nature(2023), DOI: https://doi.org/10.1038/d41586-023-0131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