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과학자들이 힘을 합쳐 포유류 뇌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단계 별로 그린 세계 최초의 '뇌 발달 지도'를 완성했다. 실험용 생쥐는 물론 인간까지 포함한 이 지도는 초기 뇌 발달 과정을 이해하고, 자폐증이나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같은 신경 발달 장애의 원인을 밝히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미 국립보건원(NIH)의 '브레인 이니셔티브(BRAIN Initiative)'에 참여한 국제 연구진은 6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와 네이처 자매지에 총 12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현재 전 세계 아동·청소년의 약 15%는 인지, 언어, 행동, 운동 능력 등에 영향을 주는 신경 발달 장애를 앓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자폐 스펙트럼 장애(ASD)와 ADHD다.
특히 인간의 뇌는 다른 동물보다 훨씬 긴 시간 동안 발달하기 때문에, 발달 초기에 생긴 문제가 평생 신경 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과학자들은 이 시기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뇌 질환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첫걸음이라고 말한다.
연구진은 다양한 동물의 뇌세포를 분석해 세포가 언제 어디서, 어떤 유전자를 켜고 끄는지 추적했다. 그 결과, 뇌 속 수백만 개의 세포가 시간에 따라 어떻게 분화하고 이동하며 연결되는지 세밀하게 밝혀냈다.
예를 들어, 가바(GABA, 감마 아미노 부틸산)를 분비하는 신경세포는 신경신호를 억제해 뇌의 과도한 활동을 제어하는 브레이크 역할을 한다. 연구진은 120만개 이상의 생쥐 뇌세포 데이터를 분석해 가바 세포의 계보를 추적했고, 가바 세포 일부는 출생 후에도 오랫동안 발달하며 감정·결정·학습에 관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즉, 이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아이가 태어난 후에도 뇌 회로가 바뀔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더 존재한다는 뜻이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시각 정보를 처리하는 뇌 영역인 시각피질의 세포 발달 과정을 살폈다. 생쥐의 어린 시절부터 성체까지 약 77만개의 세포를 분석해 발달 경로를 그렸다. 그 결과, 출생 전보다 출생 후에 빛을 보고, 세상을 인식하는 경험이 뇌 발달에 큰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아이의 환경과 자극이 뇌 발달에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환경이 뇌 구조를 바꿀 수 있다는 점은 신경세포 수백만 개의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에서도 나타났다. 이 연구에서도 시각 자극과 같은 감각 경험이 뇌의 영역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깊게 관여한다는 점이 밝혀졌다.
세포 수준에서 정밀한 뇌 발달 지도가 완성되면서, 과학자들은 뇌 발달의 결정적 시기를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됐다. 이 시기는 뇌가 특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시점으로, 치료나 교육, 자극을 통해 더 나은 방향으로 조정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다.
조슈아 고든(Joshua Gordon) 미국 컬럼비아대 정신과학과장 겸 전 미 국립정신건강연구소 소장은 "이 지도들은 건강과 질병 속에서 발달하는 뇌를 지배하는 메커니즘을 이해하고자 하는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매우 중요한 자료"라며 "자폐증, 조현병, 그리고 뇌 발달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진 다른 질환들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구축할 수 있는 발판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참고 자료
Nature(2025), DOI: https://doi.org/10.1038/s41586-025-096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