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자들이 우주 멀리 은하 중심의 거대한 블랙홀에서 관측 사상 가장 밝은 빛을 포착했다. 태양 질량의 30배 이상인 별이 블랙홀에 가까이 갔다가 중력에 이끌려 산산이 찢기고, 이 여파로 강력한 섬광이 터져 나온 것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공대(Caltech) 물리수학천문학부의 매튜 그레이엄(Matthew Graham) 교수 연구진은 "지구에서 200억 광년(光年·1광년은 빛이 1년 가는 거리로 약 9조4600억㎞) 떨어진 은하 중심의 초거대 블랙홀에서 발생한 사상 최대 섬광을 관찰했다"고 4일(현지 시각) 국제 학술지 '네이처 천문학(Nature Astronomy)'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이 현상이 조석파괴 사건(TDE·Tidal Disruption Event)으로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TDE란 블랙홀에 근접한 별이 위치에 따라 중력을 달리 받고 찢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마치 거센 소용돌이에 휘말려 한순간에 조각나는 배처럼, 거대한 별이 블랙홀 앞에서 산산이 부서진 것이다.
블랙홀은 사물을 끌어당기는 힘인 중력이 엄청나게 강해 모든 물질을 빨아들이는 천체이다. 빛조차 빠져나오지 못해 검은 구멍이란 뜻의 이름이 붙었다. 하지만 블랙홀이 삼킨 별의 일부는 전자기 에너지(빛)로 방출된다. 이번에 방출된 자외선·가시광선 에너지 총량은 태양 1개 질량이 완전히 빛으로 변할 때 나오는 에너지에 맞먹는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우주에서도 이렇게 큰 에너지가 한 번에 방출되는 일은 극히 드물다.
연구진은 이 광원을 2018년 처음 발견했다. 당시에는 가까운 은하에서 나오는 흔한 폭발로 여겼다. 하지만 2023년 후속 관측 결과, 이 빛은 약 100억 년 전 방출된 것이며, 우주 팽창을 고려하면 해당 영역은 현재 지구에서 약 200억 광년 떨어져 있음이 확인됐다. 즉, 100억 년 전 벌어진 일이 이제야 우리 눈에 닿은 셈이다.
빛이 나온 위치는 은하 중심의 초대질량블랙홀이 주변 물질을 빨아들이며 빛을 내는 활동은하핵(AGN·Active Galactic Nucleus)이다. 광원의 밝기는 폭발 직후 기존 대비 40배 이상 증가했으며, 지금까지 보고된 AGN 폭발 중 가장 강했던 사례보다 약 30배 더 강력한 것으로 확인됐다. 너무 밝아서 연구진은 이 사건에 '슈퍼맨(Superman)'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블랙홀 주변에는 가스·먼지가 중력에 끌려가면서 회전하는 강착원반(Accretion Disk) 이 형성된다. 이곳에서 매우 큰 별이 탄생할 수 있다고 오랫동안 예측돼 왔지만 직접 증거는 없었다. 이번 관측은 초대질량블랙홀 주변 강착원반에서 거대 별이 존재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가장 유력한 사례로 평가된다.
블랙홀 주변은 고요한 어둠이 아니라 별이 태어나고 찢기고 삼켜지는 역동적인 우주 정글일 수 있다는 의미다. 그레이엄 교수는 "블랙홀은 생각보다 훨씬 역동적이다"라며 "이 현상을 완전히 이해하려면 긴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사건이 어떻게 마무리될지 알아내려면 앞으로도 장기 관측이 필요하다. 빛이 발생한 곳이 너무 멀리 있어 그곳에서 2년 동안 벌어진 일이 지구에서는 약 7년 뒤에야 보인다. 우리는 지금 별이 블랙홀에 삼켜지는 장면을 4분의 1 속도 슬로모션으로 보고 있는 셈이다.
참고 자료
Nature Astronomy(2025), DOI: https://doi.org/10.1038/s41550-025-026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