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생제가 듣지 않는 내성(耐性) 세균을 물리칠 신무기가 흙에서 나왔다. 토양 박테리아가 그 주역이다. 예전부터 기존 항생제보다 100배나 강력한 항균 물질을 만들고 있었지만 아무도 몰랐다. 박테리아가 다른 세균을 물리치기 위해 만들던 항균 물질 자체가 아니라 그 전 단계 물질이었기 때문이다.
영국 워릭대 화학과의 그레고리 챌리스(Gregory Challis) 교수 연구진은 "토양 박테리아인 스트렙토마이세스 코엘리콜러(Streptomyces coelicolor)에서 항생제 내성균을 물리칠 새로운 항균 물질을 찾았다"고 지난달 27일(현지 시각) 국제 학술지 '미화학회지(JACS)'에 발표했다.
◇자연에서 찾은 눈먼 시계공
과학자들은 항생제 내성균 문제를 해결할 답을 자연에서 찾고 있다. 플레밍이 세계 최초의 항생제인 페니실린을 발견한 곳도 푸른곰팡이였다. 챌리스 교수 연구진은 항균 물질을 분비하는 토양 박테리아인 스트렙토마이세스를 다시 연구했다. 이 박테리아는 이미 1965년 천연 항생제인 메틸레노마이신(methylenomycin) A를 생산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예상대로 메틸레노마이신 A는 요즘 항생제 내성균에 듣지 않았다. 연구진은 토양 박테리아가 메틸레노마이신 A를 합성하는 다단계 경로를 분석했다. 그 결과 최종 생성물보다 항균 활성이 100배 강한 중간 화합물인 프리메틸레노마이신 C 락톤(premethylenomycin C lactone)을 발견했다. 이 물질은 극소량으로도 치료가 어려운 항생제 내성균들을 죽였다. 말하자면 제약사가 판매하던 약보다 제조 공정에 들어가는 중간 원료의 약효가 더 좋은 셈이다.
챌리스 교수는 네이처지에 "인간은 진화가 최종 산물을 완성한다고 예상하므로, 최종 분자가 최고의 항생제이고 중간체는 효능이 떨어질 것으로 생각하기 마련"이라며 "이번 발견은 진화가 '눈먼 시계공'과 같은 존재임을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라고 말했다.
눈먼 시계공은 영국의 진화생물학저인 리처드 도킨스가 쓴 책의 제목이다. 이 용어는 19세기 신학자 윌리엄 페일리가 주장한 시계공 주장을 반박한 것이다. 페일리는 복잡한 시계를 만든 시계공처럼 생명을 만든 신이 존재한다고 주장했으나, 도킨스는 마치 눈먼 시계공이 우연히 시계를 만드는 것처럼 맹목적인 과정인 자연선택으로 생명이 만들어진다고 반박했다.
◇25년간 3900만명 죽음 부를 수도
항생제 오남용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기존 약이 듣지 않는 내성균이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항생제가 듣지 않으면 작은 상처가 나도 치명적 상황에 이를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2019년 전 세계에서 127만명이 항생제 내성균에 감염돼 사망했다. WHO는 지난달 2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항생제 내성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앞으로 25년간 3900만명이 목숨을 잃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 결과가 항생제 내성을 극복할 새로운 약물 개발로 이어질 수 있다고 기대했다. 캐나다 맥마스터대의 제라드 라이트(Gerard Wright) 교수는 "오랫동안 잘 알려진 물질 대사 경로에서 새로운 생체 활성 물질을 찾을 수 있는 잠재력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정말 우연한 발견이다. 연구진은 지난 2006년 스트렙토마이세스의 메틸레노마이신 A 생성 경로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생체 대사 과정에는 화학반응을 촉매하는 효소가 있어야 한다. 연구진은 메틸레노마이신 A 합성 단계별로 관여하는 효소 유전자를 하나씩 제거했다. 이를 통해 2010년 토양 박테리아가 메틸레노마이신 A를 생성하는 원리를 규명하고 그 과정에서 생성되는 여러 중간 분자들을 확인했다. 세계 어느 미생물 연구실에서나 하는 기초 연구와 다른 바 없다.
논문으로만 남을 연구가 항생제 내성균을 해결할 무기로 발전한 것은 2017년 챌리스 교수 연구실의 한 박사 과정 학생이 한 실험 덕분이다. 실험 결과 메틸레노마이신 A의 합성 경로를 거꾸로 갈수록 항균 능력이 더 강해지는 것으로 밝혀졌다. 중간 단계 물질들은 최종 생성물도 막지 못하던 피부·혈액·내장 감염을 일으키는 황색포도상구균(Staphylococcus aureus)과 치명적인 혈류·요로 감염을 유발할 수 있는 장구균(Enterococcus faecium)을 물리쳤다.
◇새로운 내성균도 초래하지 않아
특히 항생제 내성균인 황색포도상구균을 죽이는 데 필요한 프레메틸레노마이신 C 락톤의 최저 농도는 mL당 1㎍(마이크로그램·1μg는 100만분의 1g)에 불과했다. 최종 생성물인 메틸레노마이신 A의 256㎍보다 현저히 낮은 수치다. 이 화합물은 또한 반코마이신(vancomycin)보다 훨씬 적은 용량으로도 박테리아를 죽였다. 반코마이신은 두 가지 장구균 감염 치료에 사용되는 '최후의 수단'이다.
연구진은 프레메틸레노마이신 C 락톤도 항생제 내성을 유발하는지 시험했다. 새 항생제가 나오면 곧 내성균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병원균에게 28일 동안 프레메틸레노마이신 C 락톤 투여 용량을 늘리고 반코마이신 투여 결과와 비교했다.
예상대로 반코마이신을 준 박테리아는 투여 용량이 늘어나자 돌연변이를 일으켜 내성이 생겼다. 28일 후에는 병원균의 성장을 억제하기 위해 8배 더 높은 용량의 약물이 필요했다. 그러나 프레메틸레노마이신 C 락톤이 박테리아를 죽이는 데 필요한 양은 변하지 않았다.
연구진은 이미 상용화 연구에 들어갔다. 연구진은 호주 모나시대 연구진과 대량 생산법도 개발해 지난 7월 국제 학술지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앞으로 프레메틸레노마이신 C 락톤이 어떻게 세균에 정확히 어떻게 작용하는지 더 연구하겠다고 밝혔다. 논문 공동 교신 저자인 로나 알칼라프(Lona Alkhalaf) 교수는 "우리는 아직 이 분자가 정확히 어디를 표적으로 삼는지 모른다"며 "작용 원리와 독성을 이해하면 항균 능력은 유지하면서 인체 독성은 제거한 유사체를 설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참고 자료
Journal of the American Chemical Society(2025), DOI: https://doi.org/10.1021/jacs.5c12501
Nature(2025), DOI: https://www.nature.com/articles/d41586-025-03218-x#ref-CR2
Journal of Organic Chemistry(2025), DOI: https://doi.org/10.1021/acs.joc.5c011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