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한 어르신이 지팡이를 짚고 이동하고 있다./뉴스1

하루 3000보 이상 걷는 습관이 알츠하이머병의 진행을 늦출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알츠하이머병은 치매 환자 3분의 2를 차지하는 퇴행성 뇌질환이다.

미국 하버드 의대 연구진은 "걷는 것과 같은 신체 활동이 알츠하이머병 위험이 큰 노인의 인지 기능 저하를 늦출 수 있다"고 4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 메디신'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하버드 노화 뇌 연구에 참여한 50~90세 성인 296명을 평균 9년 동안 추적 관찰했다. 평균 나이는 72.3세였다. 이들은 모두 연구 시작 당시에는 인지 기능에 문제가 없었지만, 뇌에는 이미 알츠하이머병의 원인으로 꼽히는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이 쌓여 있었다. 아밀로이드 베타는 원래 신경세포를 보호하는 단백질이지만, 세포에서 떨어져 나와 덩어리를 이루면 오히려 손상을 준다고 알려졌다.

연구 참여자들은 허리에 찬 만보기로 하루 걸음 수를 측정하고, 정기적으로 뇌 영상 촬영과 인지 검사를 받았다. 분석 결과, 하루 3000~5000보를 걷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인지 저하 시점이 평균 3년 늦게 나타났다. 5000~7500보를 걷는 사람은 무려 7년이나 늦춰졌다.

연구진의 분석에 따르면, 운동의 가장 큰 효과는 타우 단백질의 축적을 늦추는 데서 왔다. 타우 단백질은 아밀로이드 베타와 함께 알츠하이머병의 원인으로 꼽힌다. 원래 신경세포의 구조를 유지하는 이음새 역할을 하는 단백질이지만, 신경세포 안에서 변형되면 서로 엉켜 인지 기능에 문제를 일으킨다.

거의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은 반대로 뇌에 타우 단백질이 빠르게 쌓이며 기억력과 일상 기능이 더 빨리 떨어졌다. 걷지 않은 사람들은 원래 뇌에 있던 아밀로이드 베타에 타우까지 겹치면서 치매가 더 빨리 진행된다는 의미다. 처음에 아밀로이드 베타 수치가 낮은 사람은 시간이 지나도 인지 저하나 타우 단백질 축적이 거의 없었고, 활동량과의 상관관계도 크지 않았다.

연구를 이끈 야스미어 차트왈(Jasmeer Chhatwal) 교수는 "알츠하이머병 진행 경로에 있는 사람 중 일부가 왜 더 천천히 악화하는지 설명할 수 있는 단서"라며 "생활 습관이 질병의 가장 초기 단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알츠하이머병 초기에 생활 습관을 바꾸면 증상 발현 자체를 늦출 수 있다는 것이다.

공동 연구자인 레이사 스펄링(Reisa Sperling) 교수는 "이번 연구는 신체 활동이 뇌 건강을 지키는 핵심 요소임을 보여준다"며 "알츠하이머병으로 인한 치매를 궁극적으로 예방하고 여러 요인으로 인한 치매 발생을 감소시키려는 노력에 큰 도움이 되는 결과"라고 했다.

영국 알츠하이머연구소의 줄리아 더들리(Julia Dudley) 박사는 이번 연구에 대해 "걷기가 알츠하이머병 진행을 직접 늦춘다는 인과관계를 증명한 것은 아니다"라며 "운동이 치매 예방이나 진행 억제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을 규명하기 위해 임상시험이 더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하버드 의대 연구진은 앞으로 운동의 강도나 패턴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더 자세히 분석하고, 실제로 운동이 뇌 단백질 변화에 어떤 생물학적 작용을 하는지도 규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참고 자료

Nature Medicine(2025), DOI: https://doi.org/10.1038/s41591-025-0395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