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혜령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 연구진과 손창윤 서울대 교수 연구진이 리튬 이온이 실온에서도 100배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고체 전해질을 개발했다. 그림은 이 전해질 안에서 리튬 이온(청록색)이 이동하는 모습을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표현한 것이다. (a)는 리튬 이온이 두 가지 '통로(채널)'를 따라 이동하는 경로를, (b)는 각 경로를 따라 이동할 때 에너지가 얼마나 드는지를 색으로 나타낸 지도다. /KAIST

리튬메탈전지는 현재 사용되는 리튬이온전지보다 에너지를 훨씬 많이 저장할 수 있어 '차세대 전지'로 꼽힌다. 하지만 액체 전해질을 쓰면 불이 잘 붙어 화재 위험이 크기 때문에 상용화가 쉽지 않았다. 이를 대신할 고체 전해질이 대안으로 제시됐지만, 기존 소재는 실온에서 리튬 이온이 잘 움직이지 않아 성능이 떨어지는 것이 문제였다.

국내 연구진이 이 문제를 해결했다. 리튬 이온이 실온에서도 100배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고체 전해질을 개발한 것이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는 화학과 변혜령 교수 연구진과 서울대 손창윤 교수 연구진이 공동으로 상온에서도 작동하는 '유기 고체 전해질 필름'을 개발했다고 4일 밝혔다.

연구진이 활용한 소재는 'COF(Covalent Organic Framework)'라는 신형 다공성 재료다. 작은 구멍이 일정한 패턴으로 뚫린 구조를 갖고 있어, 리튬 이온이 이동하기 좋은 통로 역할을 한다. 이번에 만든 전해질 필름의 두께는 머리카락 굵기의 약 1/5(약 20마이크로미터) 수준이다.

COF는 2025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소재인 MOF(Metal Organic Framework)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전지 환경에서 더 높은 화학적 안정성을 유지한다는 장점이 있다.

연구진은 COF 내부에 리튬 이온을 잡아끌어 이동시키는 기능기(작용기)를 일정 간격으로 배치해, 그동안 고온에서만 빠르게 움직이던 리튬 이온이 실온에서도 쉽게 이동하도록 설계했다. 이를 통해 리튬 이온이 지나는 길을 분자 수준에서 정밀 제어할 수 있게 됐다.

특히 리튬 이온이 쉽게 분리되고 빠르게 이동하도록 돕는 '이중 설폰산화 기능기'를 기공 내부에 추가해, 이온이 가장 짧은 직선 경로로 이동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었다. 계산 시뮬레이션 결과, 이 경로 덕분에 리튬 이온이 움직일 때 필요한 에너지가 줄어 적은 에너지로도 빠르게 이동하는 것이 확인됐다.

또한 이 전해질은 자가조립(Self-assembly) 방식으로 제작돼 구조가 균일하고 표면이 매우 매끄럽다. 덕분에 리튬 금속 전극과 딱 맞물려, 이온이 오갈 때 더 안정적으로 이동할 수 있다.

시험 결과, 새 전해질은 기존 유기 고체 전해질보다 리튬 이온 이동 속도가 10~100배 이상 높았다. 이를 리튬메탈 기반의 리튬인산철(LFP) 전지에 적용했을 때 300회 이상 충·방전을 반복해도 초기 용량의 95% 이상을 유지했으며, 에너지 손실이 거의 없는 수준(쿨롱 효율 99.999%)을 보였다.

변 교수는 "상온에서도 빠르게 작동하는 유기 고체 전해질을 실제로 구현한 성과"라며 "앞으로 무기 소재와 결합하면 전극과 전해질이 맞닿는 면(계면)에서 생기는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어드밴스드 에너지 머티리얼즈(Advanced Energy Materials)'에 지난달 5일 게재됐다.

참고 자료

Advanced Energy Materials(2025), DOI: https://doi.org/10.1002/aenm.2025041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