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과학대 연구진이 사람 세포로 '미니 간'을 만들어 간세포와 별세포 간 신호를 재현했다. 회복에서 섬유화로 이어지는 과정의 초기 단계 연구를 가능하게 하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진은 연구진이 만든 3차원 간 오가노이드(장기 유사체)를 주사전자현미경(SEM)으로 촬영한 이미지./도쿄과학대

대사이상 지방간염(MASH)이 제약 시장의 새 축으로 떠오르고 있다. 비만과 당뇨병, 고지혈증 등으로 간에 지방이 쌓이며 염증이 생기는 병이다. 초기 증상이 거의 없어 방치하면 간섬유화를 거쳐 간경변, 간암으로 이어질 수 있다. 환자는 급증하고 있으나 아직 승인된 치료제는 없다.

일본 과학자들이 대사이상 지방간염으로 간이 딱딱하게 굳어버리는 과정을 세포 수준에서 밝혀냈다. 문제가 되는 신호 경로를 차단하는 약물을 찾으면 대사이상 지방간염을 예방하거나 치료하는 신약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일본 도쿄과학대 연구진은 사람 세포로 만든 간 오가노이드(장기 유사체)로 손상된 간세포가 주변 별세포(성상세포)와 주고받는 신호를 정밀하게 관찰하는 데 성공했다. 간이 딱딱해지는 섬유화 초기 단계를 재현한 것이다. 연구 결과는 지난 9월 국제 학술지 '스템셀 리포츠(Stem Cell Reports)'에 실렸다.

간은 잘 재생하는 장기다. 하지만 손상이 반복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상처를 메우기 위해 만들어진 분자 복합체인 세포외기질이 과도하게 쌓이면 섬유화가 진행된다. 이 과정이 통제되지 않으면 간이 점차 딱딱해지는 간경변으로 이어지고, 말기에는 간 이식 말고는 마땅한 치료법이 없다.

연구진은 간세포와 별세포가 주고받는 신호에 주목했다. 별세포는 평소 비타민A를 저장하고 농축하지만, 간이 손상되면 섬유화에 관여한다. 대부분 동물 실험에서 확인된 사실이라 사람에서도 똑같이 일어나는지는 불분명했다. 도쿄과학대 연구진은 사람 세포를 3D(입체)로 배양해 간과 유사한 오가노이드를 만들어 인체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나는지 연구했다.

먼저 다 자란 사람 세포를 초기 원시세포인 배아줄기세포 상태로 되돌려 유도만능줄기세포(iPS세포)를 만들었다. 이후 iPS세포를 분화시켜 간세포, 별세포와 유사한 세포로 만들고 둘을 한 데 모아 입체로 배양했다. 이렇게 해서 사람 간을 대신해 실험할 수 있는 간 오가노이드가 만들어졌다.

연구진은 간 오가노이드에서 별세포가 보내는 '수리 명령 신호(IL-1β)'를 간세포 표면 단백질(ICAM-1)이 받아들이면 세포외기질이 대량 생산되면서 간세포 증식이 촉진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별세포–간세포 간 신호의 실체를 처음으로 사람 세포 수준에서 관찰한 것이다.

간 손상 후에는 회복 과정이 먼저 진행된 뒤 섬유화로 넘어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포외기질이 지나치게 쌓이면 섬유화로 이어진다. 이번 발견은 회복에서 섬유화로 넘어가는 과도기 단계에서 어떤 신호가 오가는지 사람 세포에서 포착할 수 있는 실험적 토대를 마련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연구진은 해열·진통제 성분인 아세트아미노펜을 iHSO에 투여해 사람 간에서 흔히 나타나는 독성 반응도 재현했다. 그리고 간세포 손상, 별세포 활성화, 섬유화 촉발로 이어지는 '초기 연쇄 반응'을 실시간으로 관찰했다. 이에 따라 간 오가노이드가 신약 후보물질의 독성을 가려낼 평가 플랫폼으로 활용할 가능성도 제시된다

연구진은 앞으로 다양한 간질환에서 섬유화가 왜, 어떻게 시작돼 진행되는지 밝히는 데 간 오가노이드가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나아가 섬유화를 억제·되돌리는 신약 후보물질를 발굴하고 시험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 기초연구에서 신약 개발까지 쓸 수 있다는 말이다.

연구를 이끈 가키누마 세이 교수는 "간세포와 별세포의 직접 상호작용을 정밀하게 관찰할 수 있게 돼, 다양한 간질환 치료제 개발의 기반을 놓았다"고 말했다.

참고 자료

Stem Cell Reports(2025), DOI: https://dx.doi.org/10.1016/j.stemcr.2025.1026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