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만난 한원일 티센바이오팜 대표는 "빛을 하루 30분 쬐어주는 방식으로 배양 비용을 기존 대비 1만8000분의 1 수준으로 낮췄다"고 말했다./티센바이오팜

"인공 고기를 만드는 데 꼭 화학물질이 필요할까요? 화학물질 대신 빛으로 세포를 키우는 기술은 그 질문에서 시작됐습니다"

지난달 서울 성동구 사무실에서 만난 한원일 티센바이오팜 대표는 "헬스케어 분야 연구를 하다 보니, 건강은 치료에 앞서 기본적인 의식주에서 시작된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사람이 건강해지려면 먼저 식탁이 건강해야 하지 않나. 그래서 고기 문제에 관심을 두게 됐다"고 말했다.

한 대표는 한동대 생명과학대학을 나와 포스텍에서 의공학과 조직공학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대학에서 3D(입체) 프린터로 세포를 쌓아 인공 장기와 줄기세포 치료제, 바이오 소재처럼 인체 조직을 모방하는 기술에 매달렸다. 그 연구 끝에 그는 먹거리에 주목했다. 바로 세포 배양육이다.

배양육은 소나 닭, 또는 생선에서 줄기세포를 채취하고 근육세포로 분화시켜 만든다. 배양기에서 세포수를 늘리고 3D 프린터로 층층이 쌓으면 고기 형태가 된다. 하지만 배양육이 현실이 되기 위해선 반드시 넘어야 할 벽이 있었다. 바로 가격이다. 세포 배양에 필수적인 성장 인자와 영양소는 소태아혈청(FBS)을 통해 공급되는데, 가격이 비쌀 뿐 아니라 환경 부담도 크다.

티센바이오팜은 소태아혈청의 성장 인자를 특정 파장의 빛을 조사하는 방식으로 대체했다. 세포가 성장 신호를 받는 수용체 단백질을 빛으로 자극하는 원리다. 화학물질을 쓰지 않아 탄소 배출과 폐수 발생이 거의 없고, 전기세 말고 별다른 비용이 들지 않는다. 한 대표는 "특정 파장의 빛을 하루 30분 쬐어주면 세포가 자라난다"며 "이 방식으로 배양 비용을 기존 대비 1만8000분의 1 수준으로 낮췄다"고 했다.

티센바이오팜에서 만든 배양육 시제품./티센바이오팜

회사는 현재 무, 보리, 쌀과 같은 식용 식물의 유전자를 활용해 빛으로 세포를 키우는 기술에 대한 검증을 마무리하는 단계에 있다. 연구진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빛을 조사하지 않고도 세포의 증식과 분화를 유도하는 방식도 개발 중이다. 온도에 따라 성장과 분화를 조절하는 '온도 기반 성장 인자 시스템'이 대표적인 기술이다. 섭씨 37도 이상이면 세포가 증식하고, 35도 이하면 분화를 유도하는 방식이다.

티센바이오팜은 가격 경쟁력을 위해 배양 과정에 필요한 기초 배지와 세포 세척액, 냉동 보존액, 바이오잉크까지 직접 만든다. 한 대표는 "보통 연구용 배지는 사람이 먹을 수 없고 무엇보다 비싸다"며 "우리는 식품 등급의 원료로 배지를 만들어 쓰는데, 병값까지 포함해도 생수 한 병 정도"라고 말했다.

배양육의 성공은 비용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고기의 결이나 지방이 고루 분포한 마블링, 식감, 맛 같은 감각적 완성도 역시 중요하다. 한 대표는 생체 모사와 3D 프린팅을 연구했던 경험을 토대로 실제 고기와 비슷한 조직 구조를 구현하고 있다. 살코기와 지방 섬유를 부위별로 다르게 쌓고, 세포가 고기 고유의 색과 풍미를 내는 단백질을 스스로 만들어내도록 했다.

한 대표는 1년 내 비용이 반복적으로 들어가는 소모품을 없앤 '코스트 프리(cost-free)' 배양 시스템을 완성하겠다고 밝혔다. 기술이 상용화되면 소비자 가격은 1㎏당 4만~5만원 수준까지 낮출 수 있다고 했다. 미 농무부(USDA)가 인증한 최상위급 소고기가 1㎏당 약 8만원인 것을 고려하면 절반 수준이다.

최근 미국에서는 배양육 기업들의 미 식품의약국(FDA) 승인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3월 미션 반스(Mission Barns)의 배양 돼지고기 지방이 FDA 승인을 받았으며, 6월과 7월에는 각각 와일드타입(Wildtype)의 배양 연어, 빌리버 미츠(Beliver Meats)의 배양 치킨 제품이 승인을 받았다. 티센바이오팜은 독자 기술을 바탕으로 한국은 물론 미국·유럽 시장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 대표는 배양육 기술을 상용화 단계 직전으로 끌어올린 데 이어 같은 기술을 의료 분야로 적용하고 있다. 그는 "우리가 만드는 배양육은 단순한 세포가 아니라 먹을 수 있는 조직으로, 기술적 복잡도는 인공장기와 비슷하다"며 "티센바이오팜의 배양육 시스템이 완성되면 인공장기 대량생산에도 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 대표는 "식탁 위의 기술이 결국 헬스케어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