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료전지와 수전해 장치는 수소, 산소, 냉각수 등이 계속 순환하는 시스템이다. 이때 내부의 기체가 새지 않도록 막아주는 부품이 바로 '가스켓(개스킷)'이다. 이 부품의 성능이 떨어지면 효율이 낮아지고, 심한 경우 폭발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오근환 한국화학연구원 화학소재연구본부 책임연구원 연구진이 가스켓의 강도와 안전성, 효율을 모두 높이는 나노복합체 기술을 개발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고급 복합재 및 하이브리드 재료(Advanced Composites and Hybrid Materials)'에 지난 10월 게재됐다.
연구진은 2차원 질화붕소 나노플레이크(BNNF)라는 아주 얇은 나노 소재를 이용했다. 이 소재에 '파이렌메틸 메타크릴레이트(1-PMA)'라는 물질을 붙여 기능을 더한 뒤, 실리콘과 합성고무(EPDM) 가스켓에 섞었다.
그 결과, 소재 내부에 일종의 조밀한 '미로'를 만들어 수소 분자가 빠져나가기 어렵게 할 수 있었다. 이 구조 덕분에 기체 누출을 막는 성능이 향상되고, 고온이나 화학물질에도 쉽게 손상되지 않았다.
특히 BNNF를 단 0.5%만 섞었을 때도 성능이 확실히 향상됐다. EPDM 가스켓은 강도(영률)가 32.1% 높아지고, 수소가 새는 비율은 55.7% 줄었다. 실리콘 가스켓은 강도가 96.6% 늘고, 기체 투과율은 42.7% 감소했다. 산성이나 알칼리성 환경에서 225시간을 버티는 실험에서도 질량 손실이 거의 없을 만큼 안정성이 뛰어났다.
이 기술을 적용한 단전지 실험에서는 상용 제품과 비슷하거나 더 좋은 전류밀도를 보였다. 내부 압력이 고르게 분포돼 전극 간 접촉이 좋아졌고, 전력 효율이 높아지는 효과도 있었다. 연구진은 "BNNF가 균일하게 섞여 만들어낸 '미로 효과'와 탄탄한 결합 구조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기술은 단순히 튼튼한 가스켓을 만든 것을 넘어, 차단성·내화학성·전기화학 성능을 동시에 개선하고, 환경 규제로 활용에 제약이 있었던 기존 불소계와 실리콘 가스켓의 대안을 찾았다는 데 의미가 크다. 연구진은 현재 기술이전과 조기 실증시험을 진행 중이며, 앞으로 수소전기차, 발전용 연료전지, 대형 수전해 설비 등 다양한 현장에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를 통해 수입 의존도가 높은 실리콘계 가스켓의 국산화 기반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이영국 화학연 원장은 "환경 규제에 대응할 수 있는 비불소계 대체 소재를 확보함으로써 비용 절감과 안전성 강화를 동시에 실현할 것"이라고 말했다.
참고 자료
Advanced Composites and Hybrid Materials(2025), DOI: https://doi.org/10.1007/s42114-025-0144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