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 도착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대통령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0일 "한국이 핵추진 잠수함을 미국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하게 될 것"이라고 밝히면서, 한미 간 핵추진 잠수함 사업과 원자력협정 개정 논의가 급물살을 타게 됐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이 "핵추진 잠수함 연료 공급을 허용해 달라"고 요청한 지 하루 만의 화답이다.

한국은 핵추진 잠수함 건조에 필요한 핵심 기술인 소형 원자로 설계와 고압 선체 소재, 저소음 추진 기술을 사실상 확보한 상태다. 남은 건 연료다. 미국이 상업용, 비무기용 저농축 연료(LEU) 공급만 허용해도 SMR(소형 모듈형 원자로)을 포함한 관련 산업 전반이 크게 성장할 수 있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농축 권한을 갖는 것과 이미 농축된 연료를 수입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며 "농축 권한을 직접 요구하면 무기 개발로 오해받을 수 있어 정치적으로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핵추진 잠수함이나 전기를 만드는 상용 원전 모두 원자로에서 우라늄의 핵분열에서 나오는 에너지를 이용한다. 원자로는 우라늄 동위원소 중 원자량이 235인 우라늄235만 핵분열시킬 수 있다. 자연 상태 우라늄 중 우라늄235는 0.7%에 불과해 이 비율을 높이는 농축이 필수적이다. 일반적으로 우라늄235 비율이 20% 미만이면 저농축, 20% 이상이면 고농축(HEU)으로 분류된다.

한국은 2015년 6월 개정된 한미 원자력협정에 따라 연구 분야에서만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와 20% 미만 우라늄을 농축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농축을 한 적은 없다. 상용 원자로에 쓰는 3~5% 저농축 우라늄도 영국과 프랑스, 러시아, 중국 등에서 수입해서 국내에서 보호용 피복을 입히는 가공을 거친다.

잠수함용 원자로는 원전보다 높은 농축도의 우라늄235가 필요하다. 우라늄235의 농축도가 높을수록 연료량과 원자로 노심 크기를 줄이고, 잠항 기간과 정비 주기를 늘릴 수 있다. 반대로 저농축은 교체 주기가 짧아지고 원자로가 커지지만, 비확산 측면에서는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미국과 영국은 전통적으로 90%대 고농축 우라늄을 사용해 소형·장수명 원자로를 구현하며 해군력의 핵심 전략으로 삼아왔다. 하지만 고농축 우라늄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국가별 작전 환경과 설계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실제로 프랑스는 7%, 중국은 4%대 농축 우라늄으로 설계·운용 중이다.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명예교수는 "프랑스, 중국처럼 저농축 연료로도 충분히 작전 요건을 충족할 수 있다"며 "한국은 한반도 주변에서 작전을 수행하기 때문에 저농축 연료만으로도 잠항 지속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처럼 기술적 준비가 갖춰진 상황에서, 미 의회가 건조를 승인하면 한국은 5년 내 핵추진 잠수함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황일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명예교수는 "그동안 우리 해군은 19.9% 농축 우라늄을 쓰는 핵추진 잠수함 개발을 추진했다"고 말했다. 핵추진 잠수함은 농축 우라늄을 동력원으로 사용하지 무기용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므로 핵추진 잠수함 건조가 핵비확산조약(NPT)을 위반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 정부는 핵추진 잠수함을 북핵 위협에 대응하는 핵심 수단으로 간주하며, 1990년대부터 극비리에 건조를 추진해왔다. 당시 김영삼 정부는 원자력연구소와 국방과학연구소(ADD)와 협력해 3000t급 9척을 건조해 실전 배치한다는 계획을 세웠으나, 초기에는 외국 설계 도면을 기반으로 겨우 건조할 수준이어서 선체 설계가 큰 걸림돌이었다.

현재 한국은 4000t급 이상 차세대 잠수함(KSS-III Batch-III)을 개발 중이다. 이 잠수함은 SMR 기반 하이브리드 추진체계를 도입해, 핵잠수함과 동등한 작전 지속력과 저소음 항행이 가능하도록 설계됐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승인은 KSS-III Batch-III가 실제 작전 수준으로 개발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