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장에 사는 미생물(마이크로바이옴)이 나중에 불안, 우울 같은 정서적 문제 발생 위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보건의학센터 연구진은 유아기 장내 세균의 구성과 초등학교 시절 감정과 관련된 뇌 신경 네트워크, 불안·우울 증상 사이에 의미 있는 연관성이 있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30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에 실렸다.
연구에 따르면, 생후 만 2세 무렵 아이의 장에 클로스트리디알레스(Clostridiales) 계통과 라크노스피라세이(Lachnospiraceae) 계통에 속한 세균이 많을수록,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7세) 불안이나 우울 증상을 보일 가능성이 높았다. 두 세균 집단은 성인 연구에서도 스트레스 반응과 우울증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진은 이 과정을 이른바 '장-뇌 축(gut-brain axis)'으로 설명했다. 장과 뇌가 미생물을 통해 서로 소통한다는 것이다. 장내 세균이 뇌의 감정 처리 네트워크에 영향을 주고, 시간이 지나면서 정신 건강에 반영된다고 설명한다. 앞서 장내 미생물이 단순히 소화에만 관여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과 스트레스 반응 등에도 영향을 준다는 것이 밝혀진 바 있다.
이번 연구는 싱가포르에서 진행된 '건강한 성장 프로젝트(GUSTO)' 데이터를 활용했다. 연구진은 아이 55명이 만 2세일 때 대변 시료를 채취해 장내 미생물을 분석하고, 6세 때는 자기공명영상(MRI)으로 뇌의 감정 관련 네트워크 연결을 확인했다. 이어 7세 반 때는 보호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을 통해 아이의 불안이나 우울 경향을 평가했다.
연구를 이끈 브리지트 캘러헌(Bridget Callaghan) UCLA 심리학 교수는 "어린 시절의 장내 미생물이 학교생활 시기의 정신 건강 형성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초기 증거를 제시했다"며 "이번 결과가 인과관계로 밝혀진다면, 식단이나 프로바이오틱스(유익균) 보충 같은 간단한 방법으로도 아이의 정신 건강을 지킬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번 연구는 관찰 연구로, 세균이 실제로 정신 건강에 영향을 주었다는 인과관계를 입증한 것은 아니다. 연구진은 추가 연구로 특정 세균이 어떻게 뇌 발달에 영향을 주는지, 그리고 이를 조절할 방법은 무엇인지 규명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캘러헌 교수는 "이제는 어떤 세균이 구체적으로 영향을 미치는지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를 알게 되면 장내 환경을 바꾸는 방식으로 불안이나 우울을 예방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참고 자료
Nature Communications(2025), DOI: https://doi.org/10.1038/s41467-025-6498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