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29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한국이 핵추진 잠수함의 연료를 공급받을 수 있도록 미국이 결단해달라"고 공개 요청했다. 원자력 협정 개정의 신호탄이 될지 주목된다.
한국 정부가 핵추진 잠수함용 핵연료 확보를 공식화한 것은 기존 디젤·전기 추진의 장기 잠항 한계를 보완하고, 북한·중국 등 주변국의 잠수함 전력을 보다 깊이 추적·감시하기 위함이다. 원자로로 움직이는 핵추진 잠수함은 수십 년간 재급유 없이 운용할 수 있어 장기 작전 지속 능력이 강점으로 꼽힌다. 이 대통령이 "미군 부담을 덜 수 있다"고 언급한 것도 이 같은 운용 능력을 토대로 한 발언이다.
문제는 연료 조달이다. 원자로는 중성자가 우라늄과 충돌하면서 핵분열될 때 나오는 에너지로 전기를 생산한다. 원자로는 우라늄 동위원소 중 원자량이 235인 우라늄235만 핵분열시킬 수 있다. 우라늄235는 천연 우라늄 중 0.7%에 불과해 농축 과정이 필수적이다.
한국은 2015년 6월 개정된 한미 원자력협정에 따라 연구 분야에서만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와 20% 미만 우라늄을 농축할 수 있다. 현재 국내 상용 원전 연료는 우라늄 농축도가 보통 3~5%(저농축·LEU)로, 발전용으로 최적화돼 있다.
잠수함에는 통상 고농축 우라늄(HEU)이 쓰이며, 이는 핵무기 전용 가능성이 있어 국제적으로 민감하게 다뤄진다.
문주현 단국대 에너지공학과 교수는 "핵추진 잠수함 연료는 설계에 따라 20% 이상도 요구될 수 있다"며 "잠수함에 장기간 장착해서 쓸 경우엔 상대적으로 높은 농축도가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은 미국과의 원자력 협정 체제 아래 우라늄 고농축·재처리 분야에서 제약을 받고 있어, 미국의 동의나 완화 없이는 연료 확보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핵잠 사업을 추진하려면 협정 개정 또는 예외 적용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나오는 이유다.
더 큰 쟁점은 농축 단계의 차이가 군사적 민감성으로 직결된다는 점이다. 같은 우라늄을 3%에서 90%(무기급)까지 끌어올리는 데는 막대한 장비·에너지가 들지만, 이미 20%수준으로 농축된 물질을 90%까지 끌어올리는 데 필요한 추가 노력은 훨씬 적다. 즉, 20%급 물질이 존재할 경우, 기술적으로는 무기급 전환의 문턱이 낮아진다. 국제사회가 고농축 물질을 엄격히 통제하는 이유다.
상용 원전용 3~5% 연료를 그대로 핵추진 잠수함에 쓰기도 현실적으로 어렵다. 원전 연료는 잠수함 운용 환경과 장기 잠항 특성에 맞춰 설계된 것이 아니어서 안전·성능·취급상 제약이 크고, 국제적으로도 해당 연료를 제3국에서 확보하기는 쉽지 않다. 결국 핵잠 추진의 핵심은 단순히 기술 개발 문제가 아니라, 비확산 규범과 동맹국의 동의라는 외교·정치적 장벽을 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요청은 한국이 핵무장 의도가 아닌 '핵추진'을 명확히 하고, 한미 간 역할 분담 조정을 모색하려는 전략적 시도로 평가된다. 향후 양국 협의가 본격화될 경우, 방위·원자력·비확산이 얽힌 복합 외교전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이번 요청과 관련해 "한미 원자력협정은 이미 기존 협의를 통해 일정한 방향성에 대한 양해가 이뤄져 있다"며 "오늘 의제는 그 방향을 구체적으로 진전시키기 위해 실무 차원의 협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정상 차원에서 공유해달라는 취지였고, 미국 측도 동의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향후 구체적 진전을 위해 양국 간 후속 협의를 이어갈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