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 챗GPT 달리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전기전자컴퓨터공학과 최상현 교수 연구진이 차세대 인공지능(AI) 반도체 핵심 기술로 꼽히는 '멤리스터(memristor)'를 웨이퍼(wafer) 단위로 대규모 집적하는 데 성공했다고 28일 밝혔다. 기존 반도체의 구조적 한계를 넘어, 인간 두뇌처럼 방대한 정보를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두뇌형 반도체'로 나아가는 기술적 토대를 마련했다는 평가다.

인간의 두뇌는 약 1000억개의 뉴런과 100조개의 시냅스로 이뤄져 있다. 좁은 공간 안에서 엄청난 양의 정보를 동시에 저장하고 처리하는 구조다. 이처럼 '뇌를 닮은' 방식으로 작동하는 반도체, 즉 두뇌형 AI 칩(Brain-like AI Chip)은 차세대 인공지능 기술의 궁극적 목표로 꼽힌다.

하지만 현재의 AI 반도체는 복잡한 회로와 높은 전력 소비 탓에 두뇌의 효율성을 따라가기 어렵다. 이런 한계를 뛰어넘을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바로 멤리스터다.

멤리스터는 전류가 얼마나 흘렀는지를 스스로 기억하는 반도체 소자다. 기억(메모리)과 연산(컴퓨팅)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어, 기존 반도체보다 훨씬 빠르고 효율적이다. 구조도 단순해 더 많은 회로를 같은 면적에 집적할 수 있으며, 특히 가로선과 세로선이 격자처럼 교차하는 '크로스바(crossbar)' 형태로 배열하면 기존 메모리보다 수십 배 많은 정보를 저장할 수 있다.

문제는 대규모로 만드는 것이 쉽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금까지의 멤리스터 기술은 소규모 실험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복잡한 공정, 낮은 수율(완성률), 전류 누설과 전압 손실 문제 때문에 대면적 웨이퍼 단위로 확장하기 어려웠다.

연구진은 이런 기술적 한계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 캘리포니아대 산타바바라 캠퍼스(UC Santa Barbara)의 드미트리 스트루코프 교수 연구팀과 협력했다. 두 연구진은 반도체를 만드는 재료부터 소자(소형 부품), 회로 설계, 작동 알고리즘까지 전 과정을 함께 설계하는 새로운 방식을 도입했다.

그 결과, 복잡한 제조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지름 10cm(4인치) 크기의 웨이퍼 전면에 멤리스터 회로를 고르게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완성률(수율)은 95% 이상으로, 기존 기술보다 월등히 높았다.

연구진은 여기에 더해 멤리스터를 층층이 쌓는 3차원(3D) 적층 구조 제작에도 성공했다. 반도체를 수직으로 쌓아 올림으로써 더 많은 연산을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길을 연 것이다. 이는 멤리스터 기반 반도체가 향후 대규모 인공지능 시스템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성과다.

연구진은 이번 기술을 실제 인공지능 연산에 적용해 실험했다. 인간의 뇌 신경세포 작동 원리를 모방한 '스파이킹 뉴럴 네트워크(SNN)' 방식을 적용한 결과, 기존보다 전력 소모를 크게 줄이면서도 높은 연산 효율과 안정적인 성능을 확인했다.

최 교수는 "이번 연구는 지금까지 제한적이었던 멤리스터 집적 기술을 한 단계 도약시킨 성과"라며 "향후 인간 두뇌 수준의 차세대 AI 반도체 플랫폼 개발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지난 1일 게재됐다.

참고 자료

Nat Commun(2025), DOI: https://doi.org/10.1038/s41467-025-638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