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끼의 일종인 뱀밥철사이끼(Rosulabryum capillare) 세포 속 엽록체를 현미경으로 들여다 본 모습./위키미디어

국내 연구진이 식물 잎이 언제 늙기 시작할지를 결정하는 '분자 스위치'를 찾아냈다.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뉴바이올로지학과 임평옥, 이종찬, 김민식 교수 연구진은 27일 "핵(세포의 중심부)에서 만들어진 RNA가 엽록체로 이동해 잎의 노화를 조절하는 새로운 작동 원리를 세계 최초로 규명했다"고 밝혔다.

식물의 엽록체는 광합성을 통해 생장에 필요한 에너지를 생산하는 기관이다. 하지만 잎이 늙기 시작하면 엽록체는 스스로 분해돼, 그 안의 자원이 씨앗이나 줄기, 뿌리로 옮겨간다. 이렇게 옮겨진 자원은 다음 세대를 위한 양분이 되거나, 다음 계절의 성장을 준비하는 데 쓰인다.

이처럼 엽록체가 '에너지 공장'에서 '자원 창고'로 바뀌는 전환 과정은 식물의 생존 전략과 직결되지만, 그 시점을 정하는 분자적 신호는 그동안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연구팀은 모델 식물인 애기장대(Arabidopsis)를 이용해 잎 속 엽록체의 노화를 조절하는 새로운 유전 신호를 찾아냈다. 그 과정에서 '클로렐라 RNA(CHLORELLA RNA)'라는 분자를 발견했다.

이 RNA는 단백질을 만드는 대신, 유전자의 스위치를 켜거나 끄는 '조절 RNA'로 작용한다. 연구팀은 클로렐라 RNA가 핵에서 만들어진 뒤 세포질을 거쳐 엽록체로 이동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엽록체에 도착한 클로렐라 RNA는 엽록체 내에서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단백질 복합체(PEP complex)와 결합한다. 쉽게 말해, 엽록체가 '광합성을 계속할지' 혹은 '스스로 분해될지'를 결정하는 스위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즉, 클로렐라 RNA의 양이 많으면 엽록체가 활발히 움직이며 광합성을 유지하고, 양이 줄면 엽록체가 제 기능을 멈추고 분해되기 시작한다.

연구팀은 또 클로렐라 RNA의 양을 조절하는 상위 조절자, 즉 '지휘자' 역할을 하는 GLK 전사인자도 함께 찾아냈다. 식물이 성장기일 때는 GLK가 활발히 작동해 클로렐라 RNA를 많이 만들고, 그 결과 잎이 푸르고 광합성이 활발하다. 그러나 노화가 시작되면 GLK의 활성이 떨어지면서 클로렐라 RNA가 줄고, 엽록체가 분해되며 잎이 노랗게 변한다.

임 교수는 "이번 연구는 RNA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시공간적으로 규명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이런 접근법은 다양한 생명현상을 이해하는 데 기초가 될 뿐 아니라, 잎의 노화를 조절해 작물의 광합성 효율과 생산성을 높이는 연구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 플랜츠(Nature Plants)'에 지난 10일 게재됐다.

참고 자료

Nat. Plants(2025), DOI: https://doi.org/10.1038/s41477-025-02129-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