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암 수술 뒤 단 한 번의 혈액 검사로 재발 위험을 예측하고, 항암 치료 강도를 조절할 수 있다는 임상시험 결과가 나왔다. 이번 연구는 대부분 똑같이 항암제를 맞던 표준치료 시대를 넘어, 암 재발 위험에 따라 맞춤형 치료를 하는 정밀 의료의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호주 월터 앤드 엘리자 홀 의학연구소(WEHI)의 지니 타이(Jeanne Tie) 교수와 피터 깁스(Peter Gibbs) 교수 연구진은 "순환종양DNA(ctDNA·circulating tumor DNA) 검사로 대장암 재발 위험을 판별하고, 그에 따라 항암제 사용량을 조절할 수 있다"고 지난 20일(현지 시각) 국제 학술지 '네이처 메디신'에 발표했다.
연구 결과는 같은 날 독일에서 열린 유럽종양학회(ESMO)에서도 소개됐다. ESMO는 미국임상종양학회(ASCO), 미국암학회(AACR)와 함께 세계 3대 암 학회로 꼽힌다.
ctDNA는 암세포가 죽으면서 혈액 속으로 흘러나오는 미세한 유전자 조각이다. 수술 후 환자의 혈액에서 이 조각이 검출되면, 몸속에 암세포가 남아 있을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검출되지 않으면, 암이 대부분 제거됐다고 본다.
연구진은 대장암 3기 환자 968명을 대상으로 임상 2·3상 시험을 진행했다. 모든 환자는 수술 5~6주 뒤 혈액을 채취해 ctDNA 검사를 받았고, 그 결과에 따라 치료 방향을 달리했다. 한 그룹은 기존의 표준 항암치료를 받았고, 다른 그룹은 ctDNA 검사 결과에 따라 항암제 투여 강도를 조절했다.
수술 후 ctDNA가 검출되지 않은 환자는 전체의 약 70%(702명)에 달했다. 이들은 암이 거의 남지 않은 상태로, 수술 뒤 3년 동안 재발하지 않은 비율이 87%에 이르렀다. 연구진은 이들에게는 항암 치료 강도를 낮췄다.
항암 주기, 병용 여부, 치료 기간 등을 조정한 결과, 대표 항암제인 옥살리플라틴(oxaliplatin) 투여율은 표준치료군의 88.6%에서 감량군 34.8%로 절반 이하로 줄었다. 그럼에도 무재발 생존율은 표준치료군(88.1%)과 감량군(85.3%)에서 큰 차이가 없었다. 수술 후 암이 거의 남지 않은 환자는 굳이 강한 항암 치료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확인된 것이다.
감량 치료는 부작용도 줄였다. 입원이 필요한 환자 비율이 표준치료군 13.2%에서 감량군 8.5%로 낮아졌고, 신경 손상이나 피로감 같은 항암 부작용이 줄면서 환자의 삶의 질이 개선됐다.
반면, 수술 후 ctDNA가 검출된 환자 266명의 예후는 뚜렷하게 나빴다. 이들의 3년 무재발 생존율은 49%로, ctDNA가 나오지 않은 음성 환자군(87%)보다 훨씬 낮았다. 특히 ctDNA 수치가 높은 상위 25% 환자는 3년 무재발 생존율이 23%에 그쳤다.
연구진은 암 DNA가 나온 환자들에게는 항암 치료 강도를 높이는 강화 치료를 적용했지만, 재발 억제 효과는 제한적이었다. 강화 치료군의 2년 무재발 생존율은 51%로, 표준치료군(61%)보다 오히려 낮았다.
강화 치료 후에도 ctDNA가 계속 검출된 환자들의 예후는 더욱 나빴다. 3년 무재발 생존율이 14%에 불과했다. 반면, 치료 후 ctDNA가 사라진 환자군은 79%로 큰 차이를 보였다. 연구진은 "암 DNA가 검출된 환자에게는 기존 항암제보다 새로운 치료 전략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타이 교수는 "지금까지는 3기 대장암 환자들은 대부분 같은 강도의 항암 치료를 받았지만, 이제는 재발 위험에 따라 치료 강도를 조정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말했다. 그는 "불필요한 항암제를 줄이면 신경 손상 등 부작용을 줄이고, 환자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며 "ctDNA는 대장암 치료의 정밀 의료를 실현할 핵심 도구가 될 것"이라고 했다.
전 세계에서 해마다 약 200만명이 대장암 진단을 받는다. 이 가운데 20~40%는 결국 암이 재발하거나 전이된다. 연구진은 이번 결과가 대장암 치료를 일률적이지 않고 위험도에 기반한 맞춤 치료로 바꾸는 중요한 근거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참고 자료
Nat Med(2025), DOI: https://doi.org/10.1038/s41591-025-04030-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