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열매를 먹은 아시아 사향고양이의 배설물. 커피 열매의 생두가 보인다. 루왁 커피는 여기서 얻은 생두로 만든다./Ramit Mitra.

할리우드 스타와 인플루언서들이 즐겨 마시는 고급 커피, '루왁 커피(kopi luwak)'의 독특한 풍미가 커피 생두의 지방과 장내 세균의 합작품으로 밝혀졌다.

팔라티 알레시 시누(Palatty Allesh Sinu) 인도 케랄라 중앙대 동물학과 교수 연구진은 사향고양이의 배설물에서 채취한 커피 열매와 사람이 직접 수확한 일반 커피 열매 속 생두를 비교 분석한 결과, 사향고양이 커피에는 지방 성분이 더 많고 특정 향기 화합물이 풍부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연구 결과는 24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츠(Scientific Reports)'에 실렸다.

루왁 커피는 잘 익은 커피 열매를 먹은 아시아산 사향고양이의 배설물에서 생두를 채취해 만든다. 과육은 소화되지만 씨앗인 생두는 장을 통과한 뒤 배설된다. 이렇게 얻은 생두를 볶아 만든 커피는 1kg당 1000달러(약 140만원)가 넘는다.

과학계는 사향고양이의 소화 과정이 커피의 향과 맛에 어떤 변화를 주는지를 두고 논쟁을 이어왔다. 연구진은 그 의문을 풀기 위해 지난 1월 인도 남부 카르나타카 주의 커피 농장에서 야생 사향고양이 배설물 시료 68개와 같은 지역 커피 나무에서 직접 수확한 로부스타(Robusta) 품종 열매를 함께 수집했다.

로부스타 품종의 커피 열매. 씨앗인 생두를 볶아 만든 원두로 커피를 만든다./Ramit Mitra.

사향고양이는 열대 과일을 즐겨 먹는 야행성 동물이다. 연구진에 따르면 채집된 배설물의 85%가 나무 그루터기나 통나무 위 등 높은 곳에 쌓여 있었다. 이는 사향고양이가 특정 지점을 화장실처럼 사용하는 배설 습성 때문이라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연구진은 배설물 시료를 세척하고 얻은 생두를 갈아 성분을 분석했다. 단백질, 카페인, 당류, 지방 등 기본 영양 성분뿐 아니라 향미를 결정짓는 미세 화학물질까지 들여다봤다.

향미 분석에는 가스크로마토그래피-질량분석(GC-MS)이라는 장비를 썼다. 이 장비는 시료 속에 포함된 수백 가지 미량 화합물을 분리하고 각각의 특성을 식별할 수 있다. 연구진은 향기를 내는 휘발성·준휘발성 화합물과 지방산 메틸 에스터의 구성을 정밀하게 비교했으며, 생두의 길이·너비·무게도 함께 측정했다.

분석 결과, 사향고양이의 소화 과정을 거친 생두는 일반 생두보다 지방 함량이 높았다. 특히 향과 질감에 영향을 주는 지방산 화합물인 카프릴산 메틸 에스터와 카프르산 메틸 에스터의 농도가 확연히 높았다. 두 물질은 우유나 크림 같은 부드럽고 고소한 풍미를 내는 성분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진은 이 화합물들이 루왁 커피 특유의 부드럽고 깊은 맛을 내는 데 관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지방은 향기 화합물이 퍼지는 매개체 역할을 하기 때문에, 지방 함량이 많을수록 커피 향이 더욱 풍부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는 커피 향과 맛의 화학적 기원을 과학적으로 규명한 드문 사례다. 연구진은 "사향고양이의 장내 미생물과 효소가 생두에 자연 발효를 일으켜 화학 성분을 변화시킨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다만 이번 연구는 볶지 않은 로부스타 생두와 비교했다는 한계가 있다. 실제 시판되는 루왁 커피는 대부분 아라비카 품종이다. 연구진은 "소화 과정을 거친 지방 성분이 생두를 볶는 로스팅 후 어떤 향미로 이어지는지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참고 자료

Scientific Reports(2025), DOI: https://doi.org/10.1038/s41598-025-21545-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