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기연구원(KERI)이 국내 최초로 중전압(Medium Voltage)급 하이브리드 직류(DC) 차단기를 개발하며, 차세대 전력 전송 방식인 '멀티 터미널 직류(MTDC)' 기술의 핵심 난제를 해결했다고 20일 밝혔다. 이로써 우리나라 전력망의 안정성과 효율성이 한층 더 높아질 전망이다.
직류(DC) 송전은 교류(AC)보다 전력 손실이 적고, 태양광·풍력 같은 신재생에너지와 연계하기 쉽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큰 약점이 하나 있다. 바로 사고가 났을 때 전류를 끊기 어렵다는 점이다.
교류는 전류의 방향이 주기적으로 바뀌며 자연스럽게 0이 되는 순간(전류 영점)이 있어 쉽게 차단할 수 있다. 반면 직류는 한 방향으로만 흐르기 때문에, 고장 시 전류가 계속 이어져 강제로 전류를 0으로 만드는 장치가 필요하다.
KERI가 개발한 42㎸급 하이브리드 직류 차단기는 기존의 세 가지 기술을 결합한 '복합형 장치'다. 전력반도체 스위치가 고장 전류를 강제로 0으로 만들어 전류 흐름을 끊고, 기계식 고속 스위치가 이후 발생하는 높은 전압을 견디며 전기 불꽃(아크)을 제거하며, 에너지 흡수 장치가 남은 에너지를 흩어 시스템을 안정시킨다. 이런 과정을 통해 빠르고 안전하게 직류 전류를 차단할 수 있다.
해외 기업들도 비슷한 하이브리드 차단기를 보유하고 있지만, 전력반도체를 과도하게 사용해 장비가 비싸고 송전 효율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었다. KERI는 이를 개선하기 위해 기계식 스위치가 반도체 역할 일부를 대신하도록 설계, 비용을 낮추고 효율을 높였다. 또 21㎸와 42㎸ 두 가지 모듈 형태로 제작해, 필요에 따라 쌓아 올리며 전압을 확장할 수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기술 한계 때문에 두 지점만 연결하는 단순한 직류 송전망을 운영해 왔다. 하지만 이번 개발로 여러 지점을 연결하는 복합형 직류 송전망(MTDC) 구축이 가능해져, 대규모 정전 방지와 전력망 안정화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안현모 KERI 선임연구원은 "전류 차단과 절연, 에너지 소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랜 기간 연구를 이어왔다"며 "이번 성과로 해외 기술 의존을 줄이고 수입 대체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KERI는 이미 시제품 제작과 시험기관 검증을 마쳤으며, 국내외 기술이전과 수출을 추진 중이다. 앞으로는 100㎸급 이상 고전압 직류 차단기 기술까지 국산화해 '서해안 에너지 고속도로'와 '한반도 에너지 고속도로' 구축 사업에도 적극 참여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