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남성은 여성보다 위험한 행동을 더 한다고 생각한다. 흔히 '남성 호르몬'으로 불리는 테스토스테론이 위험을 감수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 신화에 금이 갔다. 최소한 테스토스테론이 경제 행동에도 영향을 준다는 통념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스웨덴 스톡홀름 경제대(SSE)와 캐나다 니피싱대 공동 연구진은 "대규모 임상시험에서 테스토스테론 주사를 맞은 남성과 가짜 약(위약)을 맞은 남성 사이에는 경제적 결정에서 차이가 없었다"고 지난 15일(현지 시각) 밝혔다.
남성 호르몬이 강하다고 무모한 투자를 하거나 경매에서 지지 않으려고 무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연구 결과는 지난달 23일 국제 학술지 '미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게재됐다.
연구진은 2018년부터 2023년까지 캐나다 세 지역에서 18~45세 남성 1000명을 모집했다. 이는 기존의 관련 연구보다 10~20배 많은 표본 규모다.
연구진은 참가자들을 무작위로 나눠 한쪽은 테스토스테론 11㎎을 주사하고, 다른 쪽은 가짜약을 코로 흡입하도록 했다. 연구자도 참가자도 누가 어떤 약을 받았는지 알지 못했다. 호르몬이 몸에 작용할 시간을 둔 다음, 참가자들에게 여러 가지 경제적 선택을 하게 했다. 참가자가 얼마나 위험을 감수하고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공정하거나 관대한지, 경쟁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지 등을 살폈다.
예를 들어 참가자들은 손실 위험이 있는 복권형 선택지와 확실한 금액 중 하나를 고르는 '위험 선택 실험'에서 위험 회피 성향을 평가 받았다. 이어 상대에게 돈을 나누고 제안을 수락하거나 거부하는 '최후통첩 게임', 신뢰를 기반으로 돈을 주고받는 '신뢰 게임', 타인에게 얼마를 나눠줄지 결정하는 '독재자 게임', 자선 단체에 일정 금액을 기부하는 '기부 게임' 등을 통해 공정성·관대함·이타성을 측정했다. 마지막으로 제한된 시간 안에 수학 문제를 풀며 개인 보상과 경쟁 보상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경쟁 실험'으로 경쟁 의지를 평가했다.
시험 결과, 평가 항목 중 어디에서도 남성호르몬과 가짜약 투여 그룹간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차이가 없었다. 테스토스테론이 경제적 판단에 실질적인 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논문 공동 교신 저자인 안나 드레버(Anna Dreber) 스톡홀름 경제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전 연구들은 대부분 소규모 표본을 기반으로 테스토스테론이 위험 감수나 경쟁 행동에 영향을 준다고 주장했지만 이번 대규모 연구에서는 그런 효과를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공동 저자인 마그누스 요하네손(Magnus Johannesson) 스톡홀름 경제대 교수는 "이번 연구는 대규모 표본과 사전 등록된 연구 설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며 "작은 규모의 실험에서 나타난 결과들이, 더 엄밀한 조건에서 재검증될 때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이번 실험이 단기적인 테스토스테론 변화만 다뤘다는 점에서, 장기적인 효과나 다른 용량·투여 방식에서는 결과가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실험에 여성이 포함되지 않아, 성별에 따른 차이와 장기적 영향에 대해서는 앞으로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참고 자료
PNAS(2025), DOI: https://10.1073/pnas.2508519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