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4년 우리 은하에서 폭발한 케플러 초신성의 현재 모습./NASA ESA.

우주는 정말 점점 더 빨리 팽창하고 있을까. 연세대 천문우주학과·은하진화연구센터의 이영욱 교수 연구진이 25년 동안 정설로 받아들여진 '우주의 가속 팽창 이론'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이 연구는 16일 영국 왕립천문학회가 발행하는 국제 학술지 MNRAS(Monthly Notices of the Royal Astronomical Society)에 실렸다.

1998년, 천문학자들은 먼 은하에서 폭발하는 Ia형 초신성의 밝기를 분석해 우주가 점점 더 빠르게 팽창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연구는 우주가 암흑에너지라는 미지의 힘에 의해 밀려나고 있다는 증거로 받아 들여졌고, 2011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의 결정적 근거가 됐다.

하지만 연세대 연구진은 최근의 관측 자료를 새롭게 분석해 "우주는 여전히 팽창하고 있지만, 더 이상 가속하지 않는다. 이미 감속 단계로 접어들었다"는 결론을 제시했다.

'우주는 얼마나 빠르게 팽창하고 있을까'를 알아내기 위해 천문학자들은 오랫동안 Ia형 초신성을 일종의 '기준 전등(표준촛불, standard candle)'처럼 사용해 왔다. 이 초신성은 폭발할 때 거의 같은 밝기를 내기 때문에, 얼마나 어둡게 보이느냐를 통해 "그 별이 얼마나 멀리 있는지" 계산할 수 있다. 즉, 밝기가 거리 측정의 기준이 되는 셈이다.

그런데 연세대 연구진은 이 밝기가 생각보다 일정하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초신성이 생긴 '별의 나이'에 따라 밝기가 다르게 나타난 것이다. 젊은 별이 폭발해 생긴 초신성은 예상보다 조금 더 어둡고, 나이 든 별이 폭발한 초신성은 조금 더 밝았다. 기존 우주 팽창 연구에서는 제대로 고려되지 않았던 차이다.

연구진은 약 300개의 초신성과 그 초신성이 속한 은하를 분석해, 이 현상이 거의 100억 분의 1(5.5시그마) 수준의 확실한 통계 결과라는 걸 보여줬다. 즉, 우연일 가능성은 사실상 "0"이라는 뜻이다. 이 말은 곧, 먼 은하의 초신성이 어둡게 보이는 이유가 단순히 우주가 팽창해서 멀리 있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뜻이다. 별 자체의 나이 같은 천체물리학적 요인도 영향을 주고 있었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이 효과를 반영해 초신성 데이터를 보정해 다시 계산했다. 그랬더니, 기존에 믿어왔던 '암흑 에너지가 일정하게 존재하는 우주상수 모델'이 더 이상 맞지 않았다. 대신 최근 DESI(암흑 에너지 분광관측장비) 프로젝트에서 제시한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약해지는 암흑 에너지' 모델이 훨씬 더 잘 들어맞았다.

다시 말해, "암흑 에너지가 일정하게 우주를 계속 밀어내고 있다"는 기존 생각 대신 "암흑 에너지가 점점 약해지고 있어서 우주 팽창 속도가 느려지고 있다"는 새로운 해석이 가능해진 것이다.

연세대 연구진은 앞서 밝힌 '초신성 밝기 보정 결과'를 다른 우주 관측 자료와 함께 비교해봤다. 이를 위해 '바리온음향진동(BAO)'과 '우주배경복사(CMB)' 데이터를 활용했다. BAO는 우주가 아주 어렸을 때 생긴 물질의 흔들림 자국이다. 이 자국의 크기를 보면 과거 우주가 얼마나 빨리 팽창했는지 알 수 있다. CMB는 빅뱅 직후에 남은 빛이다. 이 빛의 패턴을 분석하면 우주의 초창기 상태를 알 수 있다. 쉽게 말해, 초신성은 "지금의 우주", BAO와 CMB는 "과거의 우주"를 보여주는 자료다.

연구진은 이 세 데이터를 함께 분석했다. 그 결과, 지금까지 교과서처럼 사용되던 '표준우주모형'(우주가 일정한 속도로 가속 팽창 중이라는 모델)은 9시그마라는 통계적 차이로 맞지 않는다는 게 드러났다. '9시그마'는 "이 결과가 우연일 확률이 거의 0에 가깝다"는 뜻이다. 과학자들이 "거의 확실하다"고 인정하는 기준은 5시그마다. 다시 말해, "우주 팽창은 더 이상 가속하지 않는다. 이미 감속 단계에 들어섰다"는 연구진의 결론이 통계적으로 매우 확실하다는 뜻이다.

연구진은 초신성 데이터에 아직 다른 오차가 숨어 있는 건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광도진화 없는(evolution-free)' 우주론 테스트라는 추가 실험도 진행 중이다. 간단히 말해, 별들의 나이가 서로 비슷한 젊은 은하들만 모아 다시 분석하는 실험이다. 이렇게 하면 별의 나이에 따른 밝기 변화(진화 효과)를 완전히 제거할 수 있다. 현재 1차 실험 결과는 "우주 팽창은 이미 감속 중"이라는 연세대 연구팀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한다.

이번 연구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 연세대 손준혁 박사과정 연구원과 정철 연구교수는 "앞으로 5년 이내 LSST 탐사망원경이 발견할 약 2만 개의 새로운 초신성 호스트 은하의 나이 측정이 이뤄지면, 지금보다 훨씬 정밀한 초신성 기반 우주론 연구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연세대 연구진은 이 연구 결과가 향후 추가 검증을 통해 확정되면, 1998년 암흑 에너지 발견 이후 27년 만에 우주론의 패러다임이 근본적으로 전환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암흑 에너지의 정체, 허블 텐션, 그리고 우주의 팽창 역사와 운명을 밝히는 연구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는 한국연구재단 대학중점연구소지원사업과 중견연구자지원사업의 지원으로 수행됐다.

참고 자료

MNRAS(2025), DOI: https://doi.org/10.1093/mnras/staf16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