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7일 오후 대구 달성군 옥포읍 대구강림초등학교에서 학교안전공제회 관계자들이 코로나19 재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방역 작업을 하고 있다./뉴스1

서울에서 출근했다가 경기와 인천을 거쳐 다시 서울로 퇴근하는 하루 경로에 감염병 전파의 과학이 숨어 있다. 국내 연구진이 복잡한 출퇴근 경로를 컴퓨터 모델로 만들어, 감염병이 실제로 퍼지는 모습을 재현했다.

이재우 인하대 물리학과 교수 연구진은 "국내 이동통신사 데이터를 활용해 사람들이 이동하는 경로를 반영한 새로운 감염 확산 예측 모델 '통근 메타집단 모델(CMPM)'을 개발했다"고 15일 미국 물리학회(AIP)가 발간하는 국제 학술지 '카오스(Chaos)'에 발표했다.

생태학과 감염병 연구에 쓰는 '표준 메타집단 모델(SMPM)은 인구를 '도시 단위의 하나의 덩어리'로 나누고, 같은 지역 안에서는 모두 비슷하게 섞여 생활한다고 가정한다. 이 방식은 단순하고 계산이 빠르다는 장점이 있지만, 현실에서 매일 다른 지역으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의 움직임은 반영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기존 모델은 서울에서 일하지만 사는 곳이 경기도와 서울로 각각 다른 사람들을 구분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감염병이 너무 빨리 퍼지거나 지역별 차이가 사라지는 등 현실과 다른 결과가 나온다.

이 교수는 인구를 도시 단위로만 묶지 않고 통근 경로까지 반영했다. 낮에는 일터에서, 밤에는 집 근처에서 다른 사람들과 접촉하는 실제 생활 패턴을 그대로 모델에 담았다. 덕분에 감염이 어느 경로를 통해 퍼지는지 더 정밀하게 분석할 수 있다.

연구진은 국내 2위 이동통신사 KT의 2019~2020년 통신 데이터를 활용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시뮬레이션(모의 실험)했다. 그 결과, 서울 종로구처럼 인구 밀도가 높고 통근 인구가 많은 지역은 감염이 빠르게 퍼지고 주변 도시로도 빠르게 확산됐다. 반대로 강릉시나 제주시처럼 외부와 연결이 적은 지역은 감염이 훨씬 천천히 퍼졌다. 기존 모델은 이런 차이를 거의 반영하지 못했다.

연구진이 KT의 통신 데이터를 기반으로 2019년과 2020년 한국 전역의 출퇴근 흐름을 분석해 구축한 '통근 네트워크'. (a) 선들은 지역 간 출퇴근 경로, 선의 두께는 이동 인구 규모를 뜻한다. 색이 붉을수록 사람이 많이 모여 있는 지역이다. (b) 지역 간 이동 거리가 얼마나 다양하게 분포하는지를 보여주는 그래프. (c) 출퇴근 인구 규모(네트워크 가중치)의 분포를 나타낸 그래프로, '많이 몰린 구간은 적고, 적게 오가는 구간은 많다'는 비대칭 구조를 보여준다./Chaos

연구진은 감염이 시작되는 위치에 따라 확산 속도와 감염이 가장 심한 시점(정점)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도 살펴봤다. 통근 메타집단 모델은 지역별 통근 특성에 따라 감염이 가장 심해지는 시점을 83일부터 119일까지 다양하게 나타냈다. 기존 모델은 대부분 100일 안팎으로 거의 비슷하게 예측했다.

연구진은 지역 간 이동이 복잡한 국가일수록 감염병 확산을 예측하는 데 통근 메타집단 모델이 유용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 교수는 "정부와 방역 당국은 일률적인 봉쇄 조치 대신, 통근 인구가 많은 지역과 외부 연결이 적은 취약 지역에 맞춤형 대응 전략을 세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통신 데이터와 무작위로 만든 가상 데이터(랜덤 모델)를 비교한 결과, 현실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통근 메타집단 모델이 훨씬 더 사실적인 감염 확산 양상을 재현한다는 점도 확인했다. 연구진은 실제 이동 데이터에는 단순 통계만으로는 알 수 없는 이동 방향과 특정 지역으로 사람들이 몰리는 패턴 같은 구조적 특징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재우 교수는 "일상의 이동 경로는 단순한 생활 패턴이 아니라, 감염병 확산의 흐름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라며 "통근 메타집단 모델로 통근 패턴이 감염병 확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실시간 분석함으로써, 방역 당국이 보다 정밀하고 효율적인 대응책을 마련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코로나19가 2019~2020년 서울 종로구(a), 대구 중구(b), 강릉시(c), 제주시(d)에서 어떻게 퍼졌는지를 두 가지 모델로 재현해 비교했다. 통근 정보를 적용한 CMPM(왼쪽)은 종로구처럼 인구 밀도가 높고 통근 인구가 많은 지역은 감염이 빠르게 퍼지지만, 강릉시나 제주시처럼 외부와 연결이 적은 지역은 감염이 훨씬 천천히 퍼지는 것을 보여줬다. 기존 모델(오른쪽)은 이런 차이를 거의 반영하지 못했다./Chaos

참고 자료

Chaos(2025), DOI: https://doi.org/10.1063/5.0284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