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억명 이상이 앓고 있는 만성 요통에 새로운 치료제가 등장했다. 대마(大麻) 성분으로 만든 첫 비중독성 통증 치료제로, 임상 3상 시험에서 심각한 부작용 없이 효과를 보였다.
독일 하노버 의대를 중심으로 한 국제 연구진은 "임상 3상 시험 결과 대마 식물에서 추출한 성분으로 만든 신약 'VER-01′이 통증 완화 효과를 보이면서도 중독이나 심각한 부작용 없이 안전했다"고 29일(현지 시각) 국제 학술지 '네이처 메디신(Nature Medicine)'에 발표했다.
만성 요통은 3개월 이상 허리에 통증을 느끼는 증상으로, 오래 앉아 있는 생활 습관이나 노화, 근육·신경 손상 등 다양한 이유로 발생한다. 일상 생활에 큰 지장을 줘 삶의 질 저하와 장애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만성 요통 치료는 주로 소염 진통제나 마약성 진통제(오피오이드)에 의존한다. 하지만 소염 진통제는 장기 복용 시 심혈관계나 소화기 부작용이 우려되고, 마약성 진통제는 중독성이 강해 늘 남용 위험을 안고 있다.
독일 바이오 기업인 버타니칼(VERTANICAL)은 대마의 잎과 꽃에서 추출한 성분으로 만성 요통 경구용 치료제 VER-01을 개발했다. 연구진은 만성 요통 환자 820명에게 VER-01을 복용시켰다. 모두 기존 비마약성 진통제로 충분한 효과를 보지 못한 환자들이었다.
통증은 아예 없는 상태인 0에서 극심한 통증인 10까지 자가 진단한다. VER-01을 투여한 그룹은 12주 후 통증 수치가 평균 1.9점 감소했다. 반면 위약(가짜약)을 투여한 그룹은 0.6점 감소에 그쳤다.
연구진은 6개월 동안 연장된 연구에서도 VER-01을 투여받은 환자들의 통증이 추가로 1.1점 더 줄었다고 밝혔다. 단순히 일시적인 효과가 아니라 지속적인 통증 완화가 가능함을 보여준다.
부작용 측면에서도 VER-01은 비교적 안전했다. 일부 참가자들이 초기 치료 단계에서 어지럼증, 졸림, 메스꺼움을 호소했지만 대부분 일시적이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복용량을 점점 늘려야 하는 내성이나 의존성, 금단 증상도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마약성 진통제가 가진 중독성과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마티아스 카르스트(Matthias Karst) 하노버 의대 교수는 "VER-01은 중독 위험 없이 만성 통증을 줄일 수 있는 첫 번째 대마 기반 치료제"라며 "특히 마약성 진통제 의존이 심각한 국가들에 새로운 대안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얀 폴러트(Jan Vollert) 영국 엑서터대 교수는 "오랫동안 대마나 대마 기반 물질에 대한 연구가 높은 수준의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는데, 이번 연구가 바로 그 예"라며 "확증하려면 추가 연구가 필요하지만 통증 완화 효과는 임상적으로 유의미하다"고 말했다.
대마는 마약과 치료제의 양면성을 갖고 있다. 대마 꽃과 잎을 말려 피우는 마리화나는 테트라하이드로칸나비놀(THC) 성분이 환각과 중독을 일으켜 문제가 된다. 반면 대마에는 항경련과 진통 등 치료 효과가 있는 칸나비디올(CBD) 성분도 있어 치료제로 개발되고 있다. 미 식품의약국(FDA)은 지난 2018년 대마 CBD 성분 약품인 에피디올렉스를 소아 뇌전증 치료제로 허가했다.
연구진은 VER-01은 특정 단일 성분이 아니라 여러 성분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효과를 낸다고 설명했다. 폴러트 교수는 "이번 연구에서 사용된 물질은 특정한 형태의 추출물로, 대마초 흡연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참고 자료
Nature Medicine(2025), DOI: https://doi.org/10.1038/s41591-025-0397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