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보틱스의 제어기로 외부 센서 입력 없이 모자를 쓰고 도심을 걷는 휴머노이드의 모습./한국과학기술원(KAIST)

벽과 천장을 자유롭게 오르내리는 산업용 네 발 로봇과 강남 도심 속을 두 발로 걸어 다니는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가 상용화 무대에 오르며 주목받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은 학내 연구 성과를 기반으로 한 국내 로봇 스타트업들이 조선소와 도심 현장에서 새로운 혁신을 이끌고 있다고 30일 밝혔다. 디든로보틱스와 유로보틱스가 그 주인공이다.

디든로보틱스는 지난해 3월 박해원 KAIST 기계공학과 교수 연구실 출신 4명이 공동 창업한 로봇 전문 스타트업이다. 삼성중공업을 비롯해 HD현대삼호, 한화오션, HD한국조선해양 등 국내 주요 조선소들과 현장 맞춤형 로봇 개발에 협력하고 있다.

대표 제품 '디든(DIDEN) 30'은 사족보행 로봇으로, 선박 건조 현장에서 구조물로 빽빽하게 설치된 철제 보강재(론지)를 넘는 테스트를 성공적으로 마치며 현장 적용 가능성을 입증했다. 현재는 선박 내부의 좁은 출입구를 안정적으로 통과할 수 있도록 기능을 고도화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며, 2026년 하반기부터는 용접·검사·도장 등 실제 작업에 투입될 수 있도록 성능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에는 삼성중공업과 공동개발을 통해 건조 중인 블록에서 론지 극복, 승월(昇越) 테스트, 용접 작업까지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이는 디든로보틱스의 기술이 실험실 수준을 넘어 실제 산업 현장에서 검증받았음을 의미하는 중요한 성과이다.

디든로봇의 외부철판(론지) 및 용접 테스트./한국과학기술원(KAIST)

유로보틱스는 명현 KAIST 전기 및 전자공학부 교수 연구진 출신 3명이 공동 창업한 자율 보행 스타트업이다. 실내외 산업 현장에서 자율보행하는 로봇의 상용화를 추진하고 있다. 최근 공개된 영상에서 유로보틱스가 개발한 제어 기술을 탑재한 휴머노이드가 강남 도심 인파 속을 자연스럽게 걸어 주목을 받았다. 오는 10월 1일 열리는 국제 휴머노이드 로봇학회 '휴머노이드 2025'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휴머노이드 보행 기술 상용화를 발표할 예정이다.

핵심은 '맹목(blind) 보행 제어기' 기술이다. 유로보틱스는 다른 로봇처럼 카메라나 레이저를 발사해 주변 사물의 거리와 형태를 관측하는 라이다(LiDAR) 같은 외부 센서 없이 내장 정보만으로 보행을 결정해, 낮과 밤·날씨와 무관하게 안정적 보행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정밀한 지형 모델링 없이도 로봇이 스스로 지형을 '상상'하며 보행을 수행하는 방식으로, 보도블록·내리막길·계단 등 다양한 환경에서 동일한 제어기로 강인한 성능을 발휘한다.

이 기술은 명 교수 연구실에서 출전한 2023년 국제로봇자동화학술대회(ICRA) 사족보행 경진대회에서 출발했으며,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MIT)를 큰 점수 차로 제치고 우승해 세계적 기술력을 입증한 바 있다. 유병호 유로보틱스 대표가 당시 대회에서 팀을 이끌었으며, 핵심 자율 보행 기술 개발에 오민호·이동규 공동 최고기술책임자(CTO)가 직접 참여했다. 이후 이를 기반으로 휴머노이드 환경에 맞춘 추가 개발을 이어가며 상용화 단계에 들어섰다.

이광형 KAIST 총장은 "이번 성과는 KAIST 원천기술이 스타트업을 통해 산업 현장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며 "앞으로도 KAIST는 도전적 연구를 바탕으로 혁신 창업을 촉진하고, 글로벌 로봇 산업을 선도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유로보틱스의 제어기로 외부 센서 입력 없이 모자를 쓰고 도심을 걷는 휴머노이드의 모습./한국과학기술원(KAIST)